망각기계 FORGETTING MACHINES
망 각 기 계 F o r g e t t i n g m a c h i n e s
_ 작업노트 / 2007년 작성, 2011년 수정
시간은 흘러간다.
너무 아쉬워 붙잡고만 싶은 시간도, 두려움과 절망으로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시간도.
흘러가지 않는 시간은 없다. 시간에 감정은 없다. 가면 그뿐이다. 거슬러 갈 수도, 멈추게 할 수도 없다.
다만, 우리는 느낀다. 저 시간들과, 이 시간들, 그 시간들을….
물리적인 시간의 양과 질은 누구에게나 같을지라도, 상대적인 시간의 양과 질은 그 누구에게도 다르다. 그래서 ‘재는’ 시간과 ‘느끼는’ 시간 사이에는 간격이 있다.
오월의 그날 이후 오랜 시간이 흘렀다.
영영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흡혈귀들의 시간도 날이 밝자 빛바랜 과거사가 되었다. 우리가 누렸던 영광의 시간들은 참으로 짧았노라, 고 투덜대는 흡혈귀들의 아쉬움이 들린다. 그들에겐 피를 빨아야 할 시간이 더 필요했으리라. 하지만 날이 밝았다. 그냥 밝은 것이 아니라, 저 흡혈귀의 시간을 끝내기 위해 숱한 이들이 피를 더 흘려야 했다. 괴물에게 촌음 같았을 그 시간은, 피 흘린 이들에겐 억겁의 시간이었다.
오월의 그 시간, 멋모르고 뛰놀던 세상의 아이들이 이제 어른이 되었다.
시간은 흘러갔다. 너무 아쉬워 붙잡고만 싶은 시간도, 두려움과 절망으로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시간도, 흘러가지 않는 시간은 없었다.
그날의 폭도들에게도, 어설픈 영광이 찾아왔다.
그날의 폭도들은 이제, 민주열사라 불린다.
빨갱이 가족들은, 민주화운동 유가족이 되었다.
오월의 그날은, 역사의 품격을 갖추었다.
누군가 나타나, 이제는 그 아픔을 잊자고, 모든 걸 덮자고 점잖게 타이른다.
하긴, 정말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는가. 해 뜬지가 언젠데.
어느새 그날에 대해 말하는 것은 과거지향적인 짓인 양 치부되었다.
허나, 광주의 시간이 정말 끝난 것일까?
2006년 오월, 대추리로 출동한 일단의 군인들은 늙은 농부들을 곤봉으로 내리치고, 포승줄로 옭아맸다. 침묵과 동조로 26년 전의 학살에 동참했던 아메리카, 그들의 전쟁기지를 지어주기 위해서였다. 군경합동으로 기획된 이날의 작전명은 ‘여명의 황새울’이었다. 26년 전 빛고을을 피로 물들였던 자들의 후예다운 작전 명명법 아닌가. 금남로를 피로 물들였던 ‘화려한 휴가’는 그렇게 부활했다.
하여, 광주는 전라남도 광주에만 있는 것이 아니며, 오월은 1980년의 그날로 종결된 것이 아니었다.
그날의 폭도들에게 찾아온 것은, 어설픈 영광일 뿐이다.
2006년 시월, 바로 지금,
대한민국 대표보수를 자칭하는 김용갑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지난 6.15 대축전 행사가 벌어진 2박3일간 광주는 해방구였다. 주체사상 선전홍보물이 거리에 나부꼈다. 공권력은 없었다.”고 폭로했다. 북한추종과 반미의식이 광주에 만연하다는 얘기, 공권력이 바로서야 한다는 얘기였다. 단어 몇 개만 바꾸면 26년 전 오월의 흡혈귀들과 그를 따르는 찌라시들이 떠벌렸던 말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2006년 십일월, 바로 지금,
한국농담을 자처하는 이도형 대표는 탈북자 임천용의 인터뷰를 대서특필했다. 요점은 이랬다. 오월의 혼란과 살육은 북한에서 내려온 특수부대가 개입해 저지른 짓이었다! 남한에서 벌어진 모든 극렬사태는 북한의 공작결과였다! 농담이 참으로 진지했다.
그리고 라디오에서는 전두환의 아들과 초등학생 손자의 계좌로 의문의 뭉칫돈 41억원이 입금되었다는 뉴스가 흘러나온다.
뿐이랴,
2007년 이월, 바로 지금,
살인귀의 고향 합천에서는 그의 살육정치를 떠받드는 공원이 ‘시민의 이름으로!’ 조성되었다. 전두환의 호를 딴 ‘일해공원’은 우려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되었다. 전두환의 이름을 거부하던 이들이 이곳에서 영화 ‘화려한 휴가’를 상영하려 했으나, 전사모(전두환을 사랑하는 모임) 회원들의 방해에 시달렸다. 극우논객 조갑제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힘이 ‘일해’를 지켜냈다”고 추켜세운 뒤, 내친김에 박정희 공항과 이승만로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0년 오월, 바로 지금,
이명박 정부는 항쟁 30주년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금지했다. 이른바 민중가요가 “대정부 투쟁의식을 고취시키고 헌법질서를 훼손한다”는 이유였다. 정부가 ‘임을 위한 행진곡’ 대신에 내보낸 노래는 ‘방아타령’이었다.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는 30주년 서울행사에 ‘축하화환’을 보냈다. 무엇을 타령하고, 무엇을 축하한다는 것일까. 사람들은 대통령이 서울시장이던 시절, 오월의 영정 앞에서 ‘파안대소’하던 모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2011년 오월, 바로 지금,
‘전두환 각하의 명예회복’을 위해 충성을 맹세한 전사모 인터넷 카페에는 ‘12.12의 당위성’과 ‘5.18 광주폭동의 진실’을 알린다는 글이 가득하다. 이들은 5.18 항쟁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에 적극적으로 반대해 왔다. 이들 카페에는 ‘5월 폭동의 진상을 파헤친다’는 제목아래 북한군 특수부대 300명 투입설이 제기되어 있으나, 이른바 ‘카더라’ 식 폭로만 난무할 뿐 구체적인 증언과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
2011년 11월, 바로 오늘,
교육과학기술부는 중학교 새 역사교과서 집필 기준에서 5.18 민주화운동 내용을 삭제한다고 발표했다.
귀를 열자니 귀가 더러워지고, 입을 열자니 구역질이 솟구치는, 이 공감각적이며, 초현실적이고, 몰역사적인 수작들을 대체 무엇이라 불러주어야 할까.
누군가는 잊으려 몸부림치지만, 누군가는 뼛속까지 우려먹고 싶은 역사의 기억.
그것이 오월의 기억은 아닐까.
반복되는 악행은 망각에 기초한다. 이럴 때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망각이 보기 좋게 공조한다. 다만 가해자는 자신이 잊고 싶은 것만 골라 잊는 선택적 망각의 자세를 취한다.
결국 망각인가.
결코 잊지 않으리라던 피눈물은 말라버리고, 야비한 비웃음에는 여전히 침이 고여 있다.
21세기 망월동은 망각의 스펙터클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것은 폐허의 스펙터클이기도 했다.
스산한 옛 망월동도, 너무 다듬은 새 망월동도.
우리는 책임지지 않는 사회의 병폐가 어떻게 드러나는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끈질기게 지속되는지를 목격하고 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지만, 또한 역사는 단기간에 끝나지 않는 해석투쟁의 장이라지만, 이렇듯 천박하게 굴어도 좋은 것일까. 인간이기를 거부하며 스스로를 조롱하고, 괴물이기를 자임해도 좋은 것일까. 괴물과 벌이는 해석투쟁은 고단하며, 자괴적이다. 그리하여 냉소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다 보면, 다 지난 일이고, 남의 일일 뿐이다.
“사진은 단지 죽어 있는 것을 전달해 줄 따름이다.” (오딜롱 르동)
오월에 죽은 이들은 자신의 삶과 죽음을 얼굴로 전달해 줄 따름이다. 오랜 세월에 녹아버린 그의 얼굴을 담은, 사진의 몫은 여기까지다. 나머지는 누구의 몫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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