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S

글보기
제목좋은, 율동적인, 미학적인, 그리고 시적인 살인 기계 - 반이정2023-01-04 21:05
작성자 Level 10

15766F054BC1C1FC438E2D.jpg


2005년 펴낸 첫 사진집 <분단의 향기>에 실린 작가의 글에 따르면, 노순택은 향후 작업 전개도를 이미 설정한 듯 보였다. 그가 다룰 시공간은 한국 현대사이며, 주제는 제도화된 폭력이 될 거라 명시까지 했다. 글 말미에 “이 나라를 ‘대한미국 코메리카 공화국’이라 이름 짓고 10여 개의 소주제로 나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며 밑그림까지 그려 놨다. 첫 개인전의 포부는 6년여 지난 오늘까지 괄목할 결과물의 축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현재 그가 공언한 10여개의 소주제도 20여개로 몸을 불렸는데 그도 그럴 것이 한국현대사의 시공간은 완결체로 존재하지 않기에. 추가된 소주제들은 2008년 여름을 달군 촛불시위와 그 후일담을 기록한 ‘메가바이트 산성의 비밀’이나 2009년 1월 용산 철거민 참사의 전후를 추적한 ‘그날의 남일당’ 연작처럼, 그도 예측 못한 돌발적 현대사로부터 파생했으니, 소주제의 수는 계속 늘어갈 전망이다. 2008년 12월 아트선재센터의 <39조2항>전에 발표된 ‘좋은, 살인 Really Good, Murder’ 연작도 동기가 된 실화가 같은 해 10월 보도되었다. 한국 공군의 차세대 전투기 F-15K가 “살인기계”일 수도 있다며 개인적 번뇌를 미니홈피에 토로한 이유로 퇴교 조치된 공군사관생도의 일화가 그 실마리다. ‘상상마당’의 사진가 지원프로그램 SKOPF의 제 2회 선정자가 된 그는 2010년 연작 이름을 딴 개인전 <좋은, 살인>에서 2년 전 보여준 연작을 집대성했다. 필자는 본 전시를 편의상 세 개의 구성으로 풀었다. 1. 에어쇼와 참관객 2. 참관객의 병기 체험 3. 방위산업 전람회의 나른한 표정.


1. 민간인 대상의 에어쇼가 주안을 두는 점은 전투기의 화력보다는 곡예비행의 미학에 있다. “가시성visibility 자체가 전투의 수단”이라는 비릴리오(Virilio)의 말처럼 다이아몬드 대형이나 쐐기 대형으로 창공을 수놓는 우군 항공기 편대의 시범비행은 육군의 열병식을 공군 버전으로 번안한 것인 바, 에어쇼를 참관하는 (국방비)납세자를 가시적으로 납득시키는 군의 대외 행사다. 사진들의 초점은 인화지 위에 그저 작은 점같이 표시된 비행물체에 맞춰있다. 반면 화면 대부분을 차지하는 아웃포커스 된 관중은 유령처럼 유명무실한 존재로 대조된다. 공사생도의 퇴교조치와 ‘좋은, 살인’의 단서를 던진 F-15K가 신원미상의 남성 관중의 두개골을 관통하는(듯한) 사진 세 컷이 나란히 제시되기도 한다. 환한 재킷을 걸치고 망연자실 에어쇼를 관람하는 아웃포커스 된 여인은 하얀 소복 차림의 자식 잃은 어미처럼 읽히기도 한다. 그녀의 심장부를 관통하고 지나가는 T-50훈련기는 여인의 애통을 한층 배가시킨다. 또 어떤 사진은 다이아몬드 대형으로 곡예비행 중인 여덟 기(機)의 T-50이 마치 닌자의 투척 도검 슈리켄(手裏剣 shuriken)처럼 이름 모를 관중의 등짝에 막 꽂히는 순간을 포착한 양 보인다. 원경의 비행물체와 근경의 관중 사이에서 형성된 원근감이 착시를 만들고, 사진가의 절묘한 구도 설정이 더해지면서 에어쇼의 본래 문맥을 비튼 야유조의 메시지가 만들어진다. 괜히 비평언어에 의존할 필요도 없이 누구나 쉽게 간파할 만큼 명료한.

 좋은, 살인_전라도 2008


좋은, 살인_서울 2009



2. <좋은, 살인>의 대표 이미지를 꼽으라면 단연 전시용 헬리콥터에 장착된 M60D 기관총의 손잡이를 붙든 아이의 고사리 손과 반대편에서 총열 끝을 쥔 채 아이를 촬영하는 애 아빠의 카메라 쥔 손이 동시에 포착된 사진을 지목할 이가 많을 게다. 사진에서 아이와 아빠의 얼굴은 모두 드러나지 않았다. 사진에서 얼굴이 드러나지 않은 제 3의 인물이 있으니 노순택 자신이다. 해서 사진은 사진 촬영과 총격을 동시에 뜻하는 슈팅(shooting)의 삼각구도를 담는다. 탄창 없는 기관총이나 한낱 사진기로 누군가를 쏜들 직접적 인명피해가 발생하진 않지만, 장기적이고 상징적인 위해를 가할 수는 있다. 그것을 좋은 살인이라 비꼬아 불러도 괜찮으리라. 이 사진은 무기박람회를 야유하는 노순택과 불특정 대상에 끊임없이 자신의 총구를 들이대야 하는 사진가적 자의식이 나란히 배어있는 자기 지시적 사진이다. 이 사진이 깊은 잔상을 남기는 또 다른 이유는 아이의 등장과 관련이 있다. <좋은, 살인>에는 부모 손에 이끌려 첨단 무기 전람회를 구경 온 아이의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아이와 병기는 한 화면에 포개지면서 모순적 긴장감을 주지만 이 둘은 실로 닮은 점이 있다. 복잡하게 생각 않고 단순하게 반응한다는 점에서 아이와 병기는 같으며 그래서 섬뜩하다. 무기전람회에서 배운 아이는 나중에 그것을 스스럼없이 실행할지도 모른다! 자신의 오랜 의제인 ‘제도화된 폭력’이 고도로 미화되고 정당화된 전국 무기 체험 현장에서 그는 근사한 구도의 블랙 코미디가 보였을 수도 있다. 그것은 건전한 구경꺼리와 국방 체험 학습의 얼굴을 하고 있었으리라. 공사생도의 번민처럼 아이가 체험 학습할 전시용 무기는 분명 좋은(정교하게 제조된) 기계다. 그렇지만 궁극적으로 유능한 살인 기계일 때 가치를 인정받는 그런 기계다. 양립 불가한 무기의 모순은 무기를 신화화할 때 가려진다. 신화화의 경연장이 바로 방위산업 전시장일 수도 있다.



 좋은, 살인_충청도 2008 



개방된 참호에서 특전사요원이 여고생의 모의 수류탄 투척을 보조하는 뒷모습 사진도 부조리한 잔상을 남긴다. 포개진 젊은 남녀에게서 수류탄 투척의 긴박감 이상의 에로티즘이 스며있어서다. 수류탄의 폭발력, 전투복으로 위장한 젊은 장병의 어쩔 도리 없는 혈기, 수동적으로 위치한 여학생의 너무도 짧은 스커트와 금색 운동화가 뒤엉키면서 섬뜩하고 엉뚱한 에로티즘이 폭발한다.



 좋은, 살인_충청도 2008




3. 방위산업 전람회장의 나른함은 M2HB 중기관총 앞에 호기롭게 뒷짐 진 기갑부대원의 모습으로 한층 고조된다. 19㎜ 두께의 철판을 관통하는 이 중기관총의 총구는 우연히 부대원의 뒤통수를 겨냥한다. 그리고 노순택의 사진기가 이 기막힌 순간을 우연히 겨냥하고 격발한다. 적을 겨눈 총구가 결국 자신을 지향할 거라는 경고는 반복되어 왔다. 클리오 광고제(Clio Awards) 50주년 시상식에서 광고 포스터 부문 최고상을 수상한 ‘뿌린대로 거두리라 (What goes around comes around)’를 제작한 디자이너 이제석의 반전 포스터도 노순택의 우려 섞인 시선과 일맥상통한다.


이해가 상반된 두 집단의 격돌 현장을 지켜온 노순택의 포토저널리즘에는 상대편을 제압하는 반대편의 다양한 무기들이 등장한다. 그것은 진압봉, 성조기와 태극기, 불끈 쥔 주먹, 집회용 마이크, 카드섹션, 종이컵 안의 촛불, 전경 방패, 때론 사진기처럼 연성화 되고 위장된 형태로 드러난다. 그런데 이처럼 은유적 무기가 아닌 실제 병기가 전면에 등장한 건 대추리 상공을 비행하는 UH-60 Black Hawk 헬기와 전투기를 뒤집힌 각도로 전시한 ‘Black Hook Down’연작이 처음인 듯하며, 그 계보를 잇는 게 ‘좋은, 살인’이다. 노순택은 인화지 위로 무장 병기를 율동적으로 재구성함으로써 정치적 경고를 미학화 한다. 시위와 충돌의 정중앙을 겨냥해온 그지만 목 놓아 울부짖는 감정 과잉을 노순택의 아카이브에서 발견하기란 의외로 어렵다. 더러 추상화에 가까우면서 가슴 짠한 보도사진-가령 ‘그날의 남일당 Ⅲ’-도 있다. 전시장에서 우리는 그가 엄선한 율동적 폭력, 미학적 폭력, 고요한 폭력과 마주한다. 그리고 전율한다. 



좋은, 살인_충청도 2008


 이제석 반전 포스터 – ‘뿌린대로 거두리라 what goes around comes around




율동적인 미학적인 고요한 폭력의 기록물은, 절도 있는 북조선 아리랑 공연을 건조하게 담아낸 ‘붉은 틀’ 연작이나 피눈물 뒤엉킨 대추리 사태를 그저 원형 레이더로 환원시킨 ‘얄읏한 공’ 연작에서 두루 살필 수 있다. 그가 직설화법을 회피하는 까닭은 “정면성에서 오는 당혹스러움과 거친 느낌을 어떻게든 요리해야 할 필요”(2006년 <얄읏한 공> 작가의 글) 때문이다. 보도사진의 날것이 오늘의 시대정신과 어울리지 않다고 직감했을 것이다. 이번 개인전 도록에도 여느 작가와 달리, 노순택은 유달리 많은 말을 쏟아냈다. 그의 사진집 전부에서 그랬듯이. 전시된 결과물의 미학적 배려 혹은 고도의 은유가 자칫 의사전달의 소외로 이어질까 우려한 나머지 긴 넋두리를 늘어놓은 것만 같았다.


ps. 평소 가위와 풀을 들고 전쟁 관련 신문 기사를 스크랩한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자신이 오린 사진에 4행시를 더해 <Kriegsfibel 전쟁교본>를 낸다. 총 69편의 사진과 시가 실린 이 책의 두 번째 시는 거대한 철판을 나르는 인부들의 보도 사진을 보여주는데 그 밑으로 4행시가 적혀있다.


“이보게 형제들, 지금 무얼 만들고 있나?” “장갑차.”

“그럼 겹겹이 쌓여있는 이 철판으론?”

“철갑을 뚫는 탄환을 만들지.”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을 왜 만들지?” “먹고 살려고.”


브레히트도 잘 다듬은 보도 사진만으론 온전한 의미 전달에 실패할까 내심 부심했나보다. 노순택 사진이 시의적(時宜的)임과 동시에 시적(詩的)인 이유인지도.



반이정 dogstylist.com 


* 월간 <CAMERATa> 2010년 4월호

* http://blog.naver.com/dogstylist/40103933456 

댓글
자동등록방지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입력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