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생각, 잡글/잡글2012/08/04 09:14

 

 

 

사람이야말로 사람을 비참하게 하지만, 더위도 사람을 그리한다. 하지만 이것은 더위가 만든 사람의 풍경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 더위의 풍경. 내가 휘두른 주먹에 내가 맞아 휘청대는 꼬락서니. “지구 평균기온이 3도 오르면 양서류 전멸, 포유류 반토막”이라는 경고가 뚫린 땀구멍으로 흐르는 말복의 저녁. 북한산 건너 작은 절의 배부른 견공보살은 살기 위해 말복을 견디는 게 아니라, 살리기 위해 말복을 건넌다. 생명은 배부름으로 다가온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4610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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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생각, 잡글/잡글2012/06/12 23:41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3734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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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생각, 잡글/잡글2012/03/23 00:39





여기는 어디인가.

거짓이 사실이 되고

사실이 거짓이 되는

따뜻한 남녘의 섬.


http://hook.hani.co.kr/archives/400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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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생각, 잡글/잡글2011/08/27 09:25



종이매체와 온라인매체에서 '제목뽑기'는 참 다르다.

두 매체 모두에서 제목은, 기사내용의 집약일 뿐만 아니라 미끼로써 기능한다.

하지만, 그 정도가 다르다.

종이매체에서 제목이 '간판'의 역할에 좀 더 충실하다면, 온라인매체에서 제목은 '미끼'의 역할에 더 충실하려고 하는 것 같다. "온라인 기사는 제목 장사가 반이상"이라는 자조섞인 푸념은 정확하게 매체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제목을 둘러싼 글쓴이와 편집부의 보이지 않는 갈등도 온라인매체에서 더 심하지 않을까.

나는 겨우겨우, 간신히 글을 쓰는 편이라, 제목을 뽑을 때도 신경이 곤두선다. 
쉽사리 제목을 잡는 경우도 있지만, 어렵게 어렵게, 때론 가까스로 제목을 잡는 경우도 있다. 

지난 3년동안 에세이를 연재하고 있는 <씨네21>의 경우 내가 뽑아 보낸 제목이 수정된 경우가 지금까지 단 한 차례였다. 나를 존중해서만이 아니라, 내가 뽑은 제목이 그럴만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하지만, 온라인매체에 송고한 경우, 제목이 그대로 반영된 경우가 거의 없었다.

늘 더 선정적이었다. 잘 뽑은 제목이라고 인정해 줄만한 것도 여럿이었지만, 일단 '모니터'에서 더 눈에 띄게, 마우스 클릭을 '유인'하는데 방점이 찍힌 제목이 대부분이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은, 온라인 제목뽑기에서 '글에 금칠을 해놔도, (제목을) 클릭해야 기사'라는 현실이 되니까.

이럴 때 필자는 편집부에 감사해야 할까, 분노해야 할까.

어제 오마이뉴스에 송고했던 글의 '바뀐 제목'이 하루 종일 나를 따라 다녔다. 자꾸 떠올랐다. 엄밀하게 말해 틀린 제목은 아니었다. 틀린 제목은 아니었지만, 옳은 제목도 아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제목 덕분(아마도 그럴 것이다)에 그 글은 4만명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나는 많은 이들이 그 글을 읽기를 원했다. '희망버스의 이유'와, 그 '기록의 이유'를 말해야 했고, 또한 요청을 받기도 했고, <희망버스> 기획팀의 바닥난 재정에 우리가 힘겹게 만든 책 <사람을 보라>가 도움이 되어주길 바랐다.

그 글을 읽은 숱한 이들이, 제목만 본 게 아니라면, 글을 모두 읽어내려갔다면, 내가 말하려는 게 무엇인지 알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제목은 나를 편치 않게 한다. 내가 쓴 글의 내용에서 뽑아낸 게 분명하지만, 그래도 그 제목은 글의 얼굴이라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안타깝게도, 내가 보냈던 제목에도 나는 확신하지 못했다. 제목이 잘 안뽑아지는 글이었다. 여러 제목을 뽑아 보았다가,

사람사진만큼 쉬운 게 없고
사람사진만큼 힘든 게 없네

- 우리가 <사람을 보라>를 펴낸 이유

로 잡았는데, 다시 보아도 이건 또 아닌 것 같아

조남호의 '희망'과 김진숙의 '절망'이 마주할 때
우리는 무엇을 보았나, <사람을 보라>를 펴낸 이유


로 수정했다. 하지만.... 결국 제목은 편집부를 거치면서 '김진숙과 전태일의 유서, 같지 않기를!'이 되고 말았다. T.T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17153&PAGE_CD=N0000&BLCK_NO=3&CMPT_CD=M0009




아휴.... 잊어야지.... 나는 왜 이렇게 사소한 것을 사수하려 부르스를 치는 것일까....
어쩐지 불쌍해진 내 글에, 여기서라도 첫 제목을 달아 주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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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진만큼 쉬운 게 없고
사람사진만큼 힘든 게 없네

- 우리가 <사람을 보라>를 펴낸 이유






누구나 사진기를 들고 다니는 세상에, 우리는 산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저마다는 저마다의 사진기로 세상을 보는 방법에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 이제 사진기는 사진기에만 붙어있는 게 아니라, 전화기에도 노트북에도 심지어 장난감이나 자동차에도 붙어있다.

하루에 사진 찍는 횟수가 밥숟가락 뜨는 횟수보다 많아진 세상에, 우리는 산다.
현대사회는, 적어도 한국사회는 사진범람공화국이라 불러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대체 무엇을 보려는 것일까, 무엇을 재현하려는 것일까, 어떤 장면을 나누려는 것일까. 도대체 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본다는 것은, 보여지는 것에 대한 생각을 유발한다.
재현은, 재현되는 것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을 요구한다.

사진은, 오만가지 기능을 품고 세상을 활보하지만, 그 가운데 한 가지는 ‘목격의 전달기능’이다. 목격자에겐 증언의 욕망이 의무처럼 뒤따른다.



의문이 경이로움이 될 때


희망버스라는 듣도 보도 못한 계획에 참여해 달라는 시인 송경동의 애절하고 집요한 꾐에 빠진 사진가 예닐곱이 한중중공업 담을 넘을 때만해도 그것은 하나의 의문이었다. 의문이 그렇게 쉽게 경이로움으로 바뀔 줄 아무도 몰랐다. 그 날의 새벽은, 어쩌다 우리가 이렇게 되었는지, 우리가 정말 이렇게 살아도 좋은지를 저마다에게 묻는 동시에,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고민케 한 시간이었다. 연대였다. 우리가 잃어버렸고, 결국 되찾아야 할 것은, 눈물의 연대였다. 눈물과 땀이 뒤섞인 소금의 연대였다.

그러므로 “다시 와 달라”는 해고노동자들의 호소에 “가는 듯 돌아오겠다”고 응답한 건 희망버스 기획자들이 아니라 평범한 탑승자들이었다. “이 버스는 재가동되어야 한다”고, “이것은 우리 모두의 문제이며, 저 소금꽃들이 이대로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다”고 저마다 아우성쳤다. 의문이 경이로움이 되는, 그런 장면 앞에서 사진기들이 작동한 건 당연하다.

약속대로 2차 희망버스가 재가동되었을 때, 더 많은 사진가들이 버스에 올랐다. 하늘에서 장대비가 쏟아졌다. 부산역에서 시작된 평화행진이 폭우를 뚫고 영도에 닿았을 때, 탑승객들을 맞이한 건 한진노동자들이 아니라 거대한 물대포 장벽이었다. 물대포와 최루액이 쏟아지는 봉쇄와 저항의 장면들이 고스란히 사진기에 담겼다.

3차 희망버스는 조선소 앞 산복도로 골목골목을 헤매는, 봉쇄의 빈틈을 찾아 걷고 또 걷는 산행이었다. 왜소했던 희망버스가 거대한 물결이 되어가는 사이, 경찰에게도 응원군이 생겼다. ‘친북좌파 척결과 어르신들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성난 눈을 부릅뜬 이른바 ‘어버이’들께서 주먹을 휘두르며 버스로 골목으로 난입했다. ‘절망버스는 꺼지라’는 관변단체들의 현수막도 곳곳에 나부꼈다. 어느새 희망버스는 한국사회를 가로지르는 뜨거운 버스가 되어 있었다. 놓칠 수 없는 장면들, 기억해야 할 장면들 앞에서 각자의 사진기는 쉼 없이 찰칵댔다.

그랬던 그 버스에, ‘4대강 3종세트’(사진집, 시집, 에세이)를 기획했던 아카이브 출판사 박지홍 주간이 탑승하고 있었다. 사진가들과 박 주간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지금 당장의 연대’를 ‘사진으로’ 해보자는 데 뜻을 모았다.

처음에 뜻을 모았던 소수의 사진가만이 아니라, 희망버스를 목격하고 기록했던 더 많은 사진가들의 참여가 필요했다. 매체 소속 여부, 나이와 경력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목격한 자의 책임이 이 긴급한 사진집 한 권으로 땡처리 될 수 있는 건 아닐지라도, 희망버스에 몇 모금의 윤활유를 넣을 수는 있을 거라는 점에 모두가 긍정했다.

참으로 긴급하게, 하지만 밀도 있게, 그러므로 몇날 며칠을 새며, 따끈따끈한 사진집 한 권을 만들어 냈다.


<사람을 보라> 앞표지와 뒤표지



무엇을 보는가, 사람을 본다


용산을 되돌아본다.
“여기 사람이 있다”는 절규를 들을 줄 몰라서, 생사람 여섯이 망루에서 타 죽었다. 살려고 올라간 사람들이 죽어서 내려왔다.

한진을 되돌아본다.
벌써 몇 명이 그곳에 영혼을 묻었는가. 박창수, 김주익, 곽재규의 슬픈 이름들이 저 거대한 크레인에 보이지 않게 새겨있다. 한진중공업 조남호 회장은, 그들의 얼굴조차 모른다고 뻔뻔하게 말했다. 하지만 85호 크레인에서 233일째 외롭게 싸우고 있는 김진숙을, 조 회장은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 없을 것이다.

살려고 올라간 김진숙이 죽어 내려온다면, 조남호는 지금껏 그래왔듯 쉽사리 그녀를 잊겠지만, 더 이상은 안된다. 지금은, 망각기계가 되어버린 조 회장 당신이 치료받아야 할 시간이다. 온 몸을 던져 싸워온 김진숙이 살아 내려와 지친 몸을 달래야 할 시간이다. ‘전태일과 김주익의 유서가 같은 나라’를 ‘김진숙의 유서마저 같은 나라’로 만들어 버린다면, 우리는 희망이라는 언어를 버려야 할지 모른다.

그래서 이 사진집의 제목은 <사람을 보라>다.
처음엔 제목 아래 “남이 괴로운데 나는 아무렇지 않다면, 옆에서 누군가 고통의 아우성을 치고 있는데 내 귀에는 그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 한 번쯤 자신을 돌아보는 것, 그것이 사람이다”라는 문구를 넣었으나, 최종작업에서 뺐다. 왜 그랬을까, 책을 읽다보면 알 수 있다.

33x25cm의 커다란 판형에 124쪽 분량이다. 사진만 빼곡한 건 아니다. 본문에 실린 <이것은 사람의 말이 아니다>는 시인 송경동이 쓴 ‘희망을 절규하는 이유’다. <전태일과 김주익의 유서가 같은 나라>와 <끝나지 않은 기다림>은 소금꽃 김진숙이 쓴 ‘우리 자신의 추모사’다. 뒤편에는 참여사진가 23명의 짧은 후기도 담겨있다.

인세와 수익은 바닥난 희망버스의 연료를 채우는데 사용될 예정이다.
오는 27일 4차 희망버스가 가동되는 서울의 거리에서 기름을 넣어줄 수도 있고, 아래에 링크된 주소를 통해 온라인에서 기름을 넣어 줄 수도 있다.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8624140
http://www.yes24.com/24/goods/5589575?scode=032&OzSrank=9


이 책은 우리의 시각적 목격담이다.
우리가 목격담을 나누는 이유는, 이런 목격이 더 이상 필요 없는 사회를 갈구하기 때문이다. 사람사진만큼 쉬운 게 없고, 사람사진만큼 어려운 게 없다는 걸, 우리는 절감한다.

 




펴낸 곳 | 도서출판 아카이브
사진 | 권우성 김수진 김홍지 김흥구 노순택 류우종 박민혁 박승화 박정훈 양태훈 오은진 유성호 이명익 이미지 이재원 이정선 이치열 임태훈 정기훈 정택용 조재무 최형락 한금선
글 | 김진숙 송경동 공선옥 외
편집 | 박지홍 박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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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생각, 잡글/잡글2011/07/14 00:53

2003 서울



돼지갈비야 가끔 먹으며 보았고,
고갈비야 드나들던 실비집서 보았으며,
소갈비야 가뭄에 콩 나듯 귀하게라도 보았다만,
내 갈비야 목욕탕 거울에서 징그럽게 보았다만,
네게도 갈비가 있었구나, 처음 보았다, 네 갈비를, 쥐갈비를.

너를 닮은 대통령이 시장님이던 시절,
그분이 눈독 들이던 청계천 자락, 쓰러져가는 삼일아파트 옥상에서 나는 너를 만났지.

처참한 네 시신 위에 거적대신 셔터소리를 덮어주었던
내가, 돌이켜 생각하니 쓰리고 초라하다.

네가 스러졌던,
그리고 너를 따라 스러졌던 삼일아파트 위에,
오늘은 '롯데 캐슬 베네치아 주상복합 아파트'가 웅장한 비석으로 네 무덤을 비춘다.
롯데면 롯데고, 캐슬이면 캐슬이지, 롯데캐슬베네치아주상복합아파트라는 긴 묘비명은,
어쩐지 네 단순했던 삶을 비꼬는 것만 같아 비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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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생각, 잡글/잡글2011/06/29 23:10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이미지들을 머릿속에 넣은 채 우리들은 살아간다.

낱장의 어떤 사진들, 그것들이 가진 무게는 엄청난 낱장의 집적이자 흐름인 영화에 비하면 참으로 보잘 것 없지만, 이미지를 밀어내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영화와 달리 ‘멈춰서 버팀’으로써 자신을 각인시킨다. 이를테면 사인처럼 흐르지 않고 도장처럼 꾹 찍힌다.

머릿속에 찍힌 숱한 도장들은 대부분 분실된다. 그러므로 어떤 것들은 살아남는다. 그것은, 그것이 보여주는 ‘장면’으로 떠오르지만, 그것을 보았던 시점의 ‘나’를 상기시킴으로써, 괴롭힌다. 각인된 사진은, 그것이 설령 나를 찍은 것이 아니더라도, ‘찍힌 시점의 장면’과 ‘봤던 시점의 나’를 동시에 보여준다.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음을 고백한다.
공중부양한 남자가 있다. 그리고 남자‘들’이 있다. 하얀 운동화에, 하얗지만 튼튼한 모자를 썼다. 남자들은 벽에서 나왔다. 벽을 뚫고 나왔다. 시체를 가지러 왔다, 고 말했고 그대로 실천했다. 늙은 여자가 그들을 막아보지만, 소용없었다. 시신은 탈취되었다. 장례식장 벽을 뚫고 들어온 백골단이, 백골이 되기를 기다리는, 의문의 죽음을 맞은 노동운동가의 시신을 훔쳐갔다. 그때 그 자리에서, 누군가 사진을 찍었다.


▲ 꼭 20년전, 5월 7일 새벽 안양병원 영안실에서 벌어진 이 장면은 내게 잊을 수 없는 이미지가 되었다. 그것은 도장처럼 꾹 찍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현실이 빚어낸 초현실, 공권력이 보여준 괴물성 앞에서 '말'은 힘을 잃는다. 사진은, 20년 전의 과거사를 보여주지만, 그로써 오늘을 돌아보게 한다. ⓒ 한겨레신문



꼭 20년전, 그러니까 1991년 5월 7일 새벽 안양병원 영안실에서 벌어진 이 장면을, 나는 이튿날 <한겨레신문>에서 보았다. 미안하지만 그것은 특종이었다. 사진적 특종이었고, 슬픈 특종이었으며, 현실이 보여준 초현실이었다. 그를 죽였던 안기부가 발표한 사인은 자살이었다. 그 이름 박창수,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 노동자가 노동자 착취를 돕는 어용노조의 슬픈 현실에서 ‘양심회’를 꾸렸던 사람이었다. 그 양심선언에 대한 국가의 응답이 죽임이었다.

스무살 즈음, 그 사진을 보았고, 어느새 스무살을 더 먹었다. 그 사진은 오랜 시간 머릿속에 찍힌 도장이었다. 그 이미지를 기억할 때마다 내겐 또 다른 도장, 그 시절 죽음의 장면들, 강경대와 박승희가, 김영균과 김귀정이, 김기설과 윤금이가 순서 없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 장면들 곁에 서성대며 혼란에 빠졌던 나를 떠올린다. 이상하게도 나는 도장 파는 사람이 되었다. 현실이 찍어낸 초현실의 도장들이 예나 지금이나 곁을 맴돈다.


▲ 박창수. 의문의 죽임을 당하고, 주검마저 난자당했던 그가 꿈꾸었던 세상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얼마 전 남자의 아버지를 만났다. 우리는 한 버스에 탔다. 흰머리 가득한 꺽다리 노인이 “내가 박창수 애비요”라고 말하기 전에는 그를 몰랐다. 노인의 옆자리에 또 한명의 노인네, 박종철의 아버지가 앉아 있었다.

자식을 가슴에 묻은 애비들을 태우고 버스는 부산을 향해 달렸다. 거기 한진중공업이 있었다. 애비들을 맞은 건 하얀 운동화에 하얗지만 튼튼한 모자를 쓴 사내들, 국가와 자본의 지시를 받든, 그러나 공권력이 아닌, 그래서 더 무자비한 용역깡패들이었다. 그들 곁에서 공권력은 박수를 치고 있었다.

애비들은 겨우겨우 담을 넘었다. 만나야 했다. 박창수의 친구 김진숙, 자신들의 부패와 무능은 정리하지 않으면서 노동자의 삶만을 정리하려는 자본에 맞서 골리앗 크레인 위에서 158일째 외로운 투쟁을 벌여온 그녀를 만나야 했다. 노인들은 골리앗 앞에서 울먹였다. 국가의 응답은 “담 넘은 모든 이들의 사법처리 방침”이었다. 그러므로 절망으로 가는 희망버스는 재가동됐다. 절망의 벽에서 통곡했던 아버지들을 모시고, 박창수와 김진숙의 평범한 희망을 찾으러 가는 버스는, 7월 9일 다시 떠난다.


희망은, 절망 곁에 있을지 모른다.

자식을 가슴에 묻은 아비들은 공장 담을 넘었다. 골리앗처럼 거대한 크레인 앞에서 울먹였다. 거기 김진숙이 있었다. 늙은 아비들에게 그녀는 박창수요, 박종철이었다.



* 덧붙이는 글

1. 이 글과 사진은 영화전문지 <씨네21>의 고정칼럼란에 실었던 것을 수정보완한 것이다.

2. 지난 27일 연합뉴스는 "한진중공업 노사양측이 극적인 타결을 이루었다"고 보도했고, 숱한 매체가 이를 받아 실었다. 하지만 그것은 농간이었다. "이튿날로 예정된 조남호 회장의 국회청문회를 어떻게든 막아보려는 사측의 의도와 벼랑 끝에 내몰린 노조집행부의 조급증이 만들어낸 코미디"라고 노동자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노조집행부는 "농성노동자들에게 과태료 폭탄이 떨어질 걸 우려해 반대에도 무릅쓰고 협상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3. 조남호 회장과 한나라당 의원 전원의 불참으로 국회청문회는 무산되었다. 대신 마지막까지 저항하고 있는 노동자들을 끌어내기 위해 공권력이 한진중공업에 투입되었다.

4.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의 골리앗 크레인 투쟁은 오늘로 175일째다. 공권력 투입 후 전기와 음식이 끊겨 극한의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국가인권위에 긴급구제를 신청했다.

5.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꿈꾸는 '희망버스' 기획단은 정리해고 문제가 비단 한진중공업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닌 IMF 이후 현재까지 모든 노동자 민중의 생존의 문제이며 900만 비정규직 시대의 출발점인 구조조정의 문제임을 밝혀 왔다. 여전히 고립된 투쟁을 벌이고 있는 한진중공업 노동자들과 연대하기 위해 '2차 희망버스'는 차질없이 떠날 예정이다.

6. '희망버스'는 누구나 탈 수 있다. 7월 9일 전국에서 동시다발로 출발하는 이 버스 탑승요령은 다음카페 '비정규직없는세상' 
http://cafe.daum.net/happylaborworld 에 상세히 나와 있다.

7. 저작자의 사적재산권만을 옹호하려는 무차별적이고 배타적인 저작권 강화 움직임에 반대한다. 저작물은 누군가의 창작물인 동시에 그 사회의 창작물이다. 특히 한진중공업 사태와 같은, 사회적 연대와 공유가 절실한 문제를 다룬 저작물들은 더 많이 복제되어야 하고, 더 널리 전파되어야 마땅하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589494&PAGE_C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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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생각, 잡글/잡글2011/04/11 19:44






머리를 자른지 아직 반년이 차지 않아 망설였지만,
반년을 꼬박 지켜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자전거를 마구 밟아주었더니
어느새 여성회관 앞에 서 있었다

머리를 잘라 달랬는데
이번에도 아주머니는 머리털만 자른다
이번에도 나는 죽을까봐 항의하지 않는다

머리 기르느라 힘드셨겠어요
힘들긴요, 그냥 가만 내버려 뒀을 뿐입니다
이거 파마하신 거예요?
아뇨, 스스로 물결이 이네요, 어쩔땐 물살이 거세 골치가 아프죠
예쁘게 웨이브졌는데, 자르기 아깝다
아깝긴요, 자르고 나면, 어느새 길어버리던 걸

반년 만에 찾아가면
미용실 안은 온통 새사람이다
연수생들은 여기서 최종 실습을 마치고 각자 갈 길을 떠난다
누군가는 가게를 차리고, 누군가는 취직을 하고, 또 누군가는....

칠년 단골을 알아봐 주는 이는
경상도 사투리가 묘하게 세련된 우리 실장님
사납게 물결치는 긴머리 남자를 맡아 긴장한 연수생에게 한 말씀
응, 자기야, 우리 사장님은 바빠서 자주 못오시니까 걱정말고 시원하게 잘라 드리세요, 상고 스타일 할 줄 알지? 그걸로 

어릴 적,
어머니는 나를 이발소에 보내기 전에 참빗으로 머리를 빗어주시곤 했다
누구나 이가 있던 시절이지만, 머리 자르는데 이가 너무 많으면 창피하니까....
그 촘촘한 참빗 그물에 걸려 후두둑 떨어진 통통한 녀석들이 살겠다고,
살아보겠다고 아둥바둥 누런 종이 위를 필사적으로 기어가는데,
귀를 바짝 갖다대면 사각사각, 비명의 몸무림 소리가 들리는거야
매정하게도 손톱으로 꾸욱 누르면, 톡!하고, 찍!하고, 붉은 피가 터지는데,
그리하여 누런 종이가 빨갛게 물드는데, 그게 얼룩같지 않고, 꽃잎같은 거 있지
이게 다 네 피 빨아먹은 거야, 라고 말씀하셨지만
나는 그게 내 피 같지 않고, 이의 피 같은 거 있지

지금 생각해도 어머니,
그 피는 아들이 흘린 피가 아니라, 이가 흘린 피입니다
이의 생각도 제 생각과 같을 거예요

뭉텅뭉텅 잘려나가는 머리카락을 가만가만 내려다 보니 
흰머리가 늘었다
흰머리가 늙었다
흰머리야, 흰머리야 너만 늙어라

싹둑싹둑 잘려나간 머리카락들이 생각들이라면 좋겠다, 고 나는 생각한다
머리 안에 살면서도 
머리를 못잡아먹어 안달난 나의 생각들
손톱으로 꾸욱 누르면, 톡!하고, 찍!하고, 붉은 피를 흘려줄래?

칠년째, 
헤아리니 어느새 팔년째,
이천원을 건네고,
감사하다는 소리까지 듣고 나오니

자전거가 사슬에 묶인채
찍소리도 못한채
가만히 나를 기다리는 체, 하고 있는 거 아니겠어
고마워, 미안해, 그래도 밟아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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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생각, 잡글/잡글2011/03/03 11:08




..... 용서치 말아야 한다는 당신의 격노, 전쟁을 두려워 말아야 한다는 당신의 결의, 내부의 적부터 쓸어버려야 한다는 당신의 결단, 군인이 아니면서도 군인이고자 하는 당신의 정신무장과 의상무장, 당신의 결연한 자태에 나는 무장해제 당합니다.

하지만 아버님....


http://hook.hani.co.kr/archives/23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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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생각, 잡글/잡글2011/02/14 11:34




<한겨레>와 지난 1년여를 진행했던 '경기도 프로젝트'가 곧 사진집으로 묶여 나올 예정이다.
제목은 아직 미정.

10명의 사진가가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각자는 각자의 시각과 방식으로 경기도의 사람과, 사물, 풍경을 사진기에 담았다.

내 눈에 들어온 건 경기도의 분단풍경이다.
<한겨레>가 아니어도, 혹은 경기도가 아니어도 그건 꾸준히 해왔던 일이니까....

책에 들어갈 짧은 작업노트를 썼다.





서울에서 나고 자랐지만, 지긋지긋한 그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돈을 더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살기 위해서, 우리가족은 열손가락 곱절도 모자랄 만큼 이사를 다녔다. 부모님께서 겪었던 집 없는 설움을, 내가 이어받고 있지만, 나는 집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서럽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서울에 살지 말아야 했다.

결혼을 하면서 서울을 떴다. 지방에 연고가 없고, 어찌됐건 서울을 생활권으로 둘 수밖에 없는 도시 젊은이들이 택할 수 있는 삶의 거처는 싫건 좋건 경기도다. 어느새 경기도에서 15년을 살았다. 내게 경기도의 삶은 서울의 삶이 아니되, 서울을 드나드는 삶일 수밖에 없었다. 경기도는 초집중화로 왜곡된 서울중심 문화를 겨우 저지하는 완충지대인 동시에, 강화시키는 촉매지대의 역할을 겸해 왔다.

이러한 아이러니는 ‘분단상황 속 경기도’의 풍경에서도 발견된다. 강원도와 더불어 북한을 직접 맞대고 있는 유일한 행정구역인 경기도는 ‘안보’라는 측면에서 철저하게 중무장을 추구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반세기 세월이 그랬다. 그러나 ‘평화’라는 측면에서 경기도는 긴장완화와 화해, 상호교류의 관문일 수밖에 없었다. 비록 간헐적일지언정 숱한 사람과 사물이 경기도를 통해 북으로 갔고, 다시 경기도를 통해 남으로 왔다는 건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분단체제에서 경기도는 전쟁과 평화, 긴장과 이완, 단절과 교류가 살을 부비며 울고 웃는 뜨거운 동거의 시공간이었다.

나는 지난 10여 년간 진행해왔던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경기도의 분단풍경을 더 깊게, 더 오래 보려고 했다. 그것이 설령 불편할지라도, 혹은 쓴웃음을 자아낼지라도, 나는 경기도의 어떤 출발점은 이런 장면들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겐 분단에 관한 연설과 포고가 난무했을 뿐, 그 풍경의 응시와 대화가 정녕 부족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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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싫어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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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생각, 잡글/잡글2011/02/01 18:10


계간 <황해문화> 봄호에 실릴 에세이에 몇 주를 매달렸다.

써놓고 보니, 원고지 100매가 넘어버렸다.

원고량이 너무 많아 '조정'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계획대로라면 32쪽에 걸쳐 사진과 에세이가 실릴 예정이다.

안상수에서 김현과 기형도(그의 고향은 연평도였다), 나카자와 케이지, 마스셀 프루스트가 이상하게 언급되는....
잡탕 사진일기라고나 할까....

암튼, 설 전에 가까스로 원고를 보내고 나니, 나 자신이 기특하기는커녕, 왜 이런 짓을 하고 사나 싶기만..... 
어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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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싫어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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