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틀 Red House _작업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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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억 하나 – 숱한 것들 가운데

갑자기 사이렌이 고막을 때렸다. 전봇대에 매달린 확성기에서는 다급한 남자의 목소리가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왔다.

“국민여러분! 국민여러분! 여기는 민방위 본붑니다. 현재시각 공습경보를 발령합니다. 이 방송은 실제상황입니다. 북한기들이 인천을 폭격하고 있습니다. 국민여러분…. 국민여러분….”

‘아, 올 것이 왔구나…,.’ 학교에서 주입받은 투철한 반공정신은 온 세상을 향해 울려대는 사이렌 소리에 놀라 무너져 내렸다. 반공소년의 심장이 얼마나 콩딱콩딱 방망이질을 쳤던지, 하늘이 빙빙 도는 것만 같았다. 방금까지 골목에서 놀던 친구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아이는 무작정 집을 향해 달음질을 쳤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행여나 하늘에서 폭탄이 떨어지면 어떻게든 피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두 눈은 자꾸 하늘을 향했다.
엄마는 어디 가셨을까, 누나는…. 동생은…. 이러다가 폭탄이 떨어지면 영영 헤어지는 것은 아닌지…. 늘 시끌벅적하던 동네의 적막은 낯설고 기이했다. 확성기 속의 아저씨는 쉬지도 않고 떠들어대는데, 눈앞에 펼쳐진 고요함은 무어란 말인가. 청각의 난교(亂攪)와 시각의 적막 앞에서, 뇌를 향해 쏘아대는 그 신호의 불일치 앞에서,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없었다. 오래도록 기억하는 수밖에….
이웅평 대위는, 그렇게 오셨다. 아이의 학업목록에는 북괴를 탈출한 자유용사의 영웅담이 추가되었다.

2. 기억 둘 – 숱한 것들 가운데

화창한 봄날이었다. 청년은 잔디밭에 앉아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주거니 받거니, 돌아가며 노래도 흥얼거리는 마당에, 한 선배가 숨을 헐떡이며 달려왔다. 신촌에 문제가 생겼는데 함께 갈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백골단에게 사람이 맞아죽었다고 했다. 또래의 명지대 학생…. 시신이 탈취될 가능성이 높아 지킬 사람이 필요하다는 얘기였다.

밥은 주나요….

이런 머저리…. 뭔가 제대로 물어보거나, 빠져나갈 핑계를 대야 했는데, 어찌 개떡같은 질문을 던졌단 말인가. 영안실에 밥은 없었다. 대신 빵과 우유가 나왔다.
시신을 지키기 위한, 이른바 ‘사수대’는 밤을 새워 교대로 병원을 지켰다. 청바지에 청자켓을 입고, 머리에 번뜩이는 투구를 쓴 채 진압봉으로 무장한 백골단은 여기저기서 출몰했고, 누런 가로등 아래 그들의 눈매는 매서웠다. 저들이 정말 쳐들어오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죽은 이의 멍든 몸을 지키는 일도 중요할 터였지만, 청년은 자신의 안위가 더 걱정스러웠다. 다행히 시신은 탈취당하지 않았다.
그 해 오월의 거리는 뭇매로 생명을 잃은 젊은이를 추모하는 열기로 가득했다. 민주주의를 압살하는 군정에 대한 항의로 가득했다. 죽음의 정권을 끝내기 위해 죽음으로 저항하려는 이들이 늘어났다. 누군가의 분신分身과도 같았을 이들의 분신焚身…. 자욱한 최루가스에 울고, 술에 취해 훌쩍이고…. 어른이 되어 바라본 세상은 숨 막히는 아비와 규환의 장이었다.
그러다가 퍼뜩 정신이 든 건, 시인 김지하가 조선일보를 통해 내뱉은 일갈이 뒤통수를 때리면서였다.  죽음을 배후조종하는 어둠의 세력이라…. 울다가 따귀를 맞아 혼미했던 탓인지, 줏대가 없었던 탓인지 청년은 혼란에 빠졌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서강대 박홍 총장의 충격 선언이 터져 나왔다.

“이 어둠의 무리들아, 너희들을 주사파로 명하노니, 너희 뒤에는 사노맹과 사로청이 있고, 그 뒤에는 김정일이 있느니라!”

청년은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주춤거렸다. 그때, 그를 영안실로 이끈 것은 백골단의 몽둥이였나, 김정일의 지령이었나. 그에게 빵과 우유를 준 건, 죽은 이의 어머니였나, 김정일이었나.

3. 독서일기

오랜 친구의 집에서 나는 낡은 책 한 권을 꺼내들었다.
‘안과 겉.’
까뮈의 저작이었다. 까뮈의 글은 늘 독백처럼 다가온다. 그의 주절거림은 어둡다. 오랜 시간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겨우 입을 연 사람에게서 나는 묘한 입냄새가 난다. 부조리를 읊조리는 ‘반항인.’ 그의 스승 장 그르니에에 따르면 까뮈는 ‘부정하는 사람이 아니라 의심을 품은 사람’이다. 그르니에는 까뮈를 추억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 누가 인간에게 허용되어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경계를 한정할 수 있겠는가.”

나는 까뮈와 그르니에의 책을 몇 권 더 찾아 읽었다. 그랬는데, 이상하게도 ‘안과 겉’만이 오래도록 머리에서 맴돌았다. 그 책은 많은 의문을 품고 있었다.
나의 안과 겉은 어떻게 같고, 또한 어떻게 다를까. 우리의 안과 겉은 어떻게 같고, 또한 어떻게 다를까. 가련한 사진술사인 내게 ‘안과 겉’은 사진의 문제인 것처럼 다가왔다.
사진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은 ‘겉’ 뿐이다. 존 버거의 말마따나 사진은 모습에서 빌어오는 것이다. ‘안’을 보여주지 않기에, 내면이나 속사정은 사진 밖의 일인지도 모른다. 허나 꼭 그럴까? ‘겉’을 담당하면서도 ‘안’을 향한 욕망을 버릴 수 없는 너.

4. 극단의 향연

가슴에 품은 내면의 갈등을 극한까지 밀어붙여 깨달음을 얻는 이들은 향기롭다. 허나 우리가 더 자주 목격하는 이들은 자신이 품은 극단과 갈등의 화살을 남에게로 향하는 자들이다. 누구라도 자신의 방귀를 좋아할 권리가 있다지만, 그것은 자기 몸에 대한 존중이라지만, 그 향기를 타인의 코밑에 들이대는 자들을 대체 무어라 불러주어야 할까. 그런 이들은 대개 ‘확신의 화신’처럼 보인다.

한국전쟁은, 확신하는 자들의 각축장이었다. 양비론의 폐해를 안다지만, 전쟁을 전후해 남과 북에서 벌어진 일을 살피다 보면, 우리는 우울의 한 가운데 서게 된다. 누군가의 편을 들기는커녕, 환멸의 도가니탕에서 허우적거리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 그나마 행할 수 있는 가엾은 저항이자 반성이 되고 마는 것이다.
확신자들은 언제 어느 곳에서건 의심하는 자들, 부유하는 자들, 이편도 저편도 아닌 자들, 건방지게 화해를 도모하려 했던 자들을 몰아세웠다.
어제는 남한 인민의 해방을 위한 복음서를 들고 주체사상의 돌개바람을 일으켰던 이가, 오늘은 북한 인민의 해방을 위해 자본의 탱크를 주석궁으로 돌진시켜야 한다고 말할 때, 나는 궁금했다. 그의 안과 겉이…. 반공진영을 대표하는 정치지도자들이 선거승리를 위해 붉은 무리들과 내통하려 했다는 공개된 비밀을 알게 되었을 때도, 스스로를 ‘운동가’라고 부르는 존경받는 ‘진보적 휴머니스트’에게서 ‘잔인한 파시스트’의 향취를 맡게 되었을 때도 나는 궁금했다. 그들의 안과 겉.
극과 극은 통한다지만, 싸우면서 서로를 닮게 된다지만, CIA가 세계 도처에서 벌인 극악한 짓거리를 알려면 KGB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된다지만, 또한 그의 역도 성립한다지만, 그것이 인간의 본성에 관한 체념적 진술로 접수되지 않고 끔찍한 환멸로 스며오는 것은 왜일까. “인간이란 살아 움직이는 불의”라는 까뮈의 되뇜은 시공간을 가리지 않는 모양이다.

5. 처신의 규율

강화된 증오와 공포가 정치권력의 유지기반이 되는 사회에서 구성원들은 처신의 규율을 알아서 습득하고 기꺼이 동반자가 된다. 교만과 다르지 않은 긍지가 꽃을 피운다.

6. 어부의 딸

2005년 가을, 나는 A언론에 글과 사진을 실었다. 북에 나포되어 돌아오지 못한 어느 어부의 딸이 아버지의 무사귀환을 빌며 임진각 어귀에 노란손수건 수 백 장을 매어둔 사연을 담은 것이었다. 사실 그녀는 아내의 사촌언니였다. 하지만 내가 원고를 기고한 것은 이런 친족 관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그저 내 관심사항이었고, 그동안 해온 작업의 하나일 뿐이었다고 나는 말하련다. 공교롭게도 얼마 뒤에 평양취재가 잡혔다. 4년 만에 다시 찾는 평양이었다. 나는 A언론의 B기자와 파트너가 되어 취재를 진행해야 했다. 평양행 비행기 안에서, B기자는 ‘문제의 기사’를 들먹이며, 나를 힐난했다. 평양행 취재가 있는 줄 알면서도, 북한을 자극할 수 있는 글을 썼다는 게 그 이유였는데, 그의 두툼한 주둥이를 통해 뱉어진 ‘훈수’에 나는 구역질을 느꼈다.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딸의 애타는 눈물이 행여 북조선 당국의 심기를 건드릴까 걱정하던 그 분, 나는 이런 자들이 남북관계를 망쳐왔다고 생각한다.

7. 한계

여러 해 전부터 나는 한국사회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폭력의 양상들을 수집하고, 그것들이 반세기 전의 전쟁과 어떤 관계를, 얼마만큼이나 가지는지 살펴보는 작업을 진행해 왔다.
그러므로 북녘은 굳이 그 땅을 밟아보지 않더라도 피할 수 없는 시공간이곤 했다. 그곳은 가상의 상태로라도, 또는 남한사회에서 재현되는 각양각색의 형태로라도 내 작업노트에 상정된, ‘그 무엇’이었다.
요행히 몇 차례의 기회가 다가왔고, 반도의 북단은 그때마다 다른 생각들을 내게 안겨주었다. 북녘은 내게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것만을 보여주려 애썼고, 나는 그들이 보여주지 않으려는 것마저 보고 싶어 했다. 내게 보고 싶다는 마음은, 필름에 담고 싶다는 욕망과 다르지 않은 종류의 것이다. 가당찮은 일이었다. 그 땅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저 보라는 것을 성실하게 보는 것, 다만 내 방식으로 보고, 내 방식으로 필름에 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던 셈이다.
북한을 바라보는 어떤 시선도, (그것이 내부에서 비롯된 것이건, 외부에서 비롯된 것이건) 밀도 있는 작업이 되기 어렵다는 것을, 나는 타인의 작업들을 바라보면서, 또 내 작업을 검토하면서 알게 되었다. 어쩌면 북한작업은 그 한계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할 수 있을지 모른다.

8. 펼쳐들고, 스며들고, 말려들고

북녘은, 나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기억의 온갖 군데에 자질구레한 파편을 공급해 왔다. 그곳은 금기이자 호기심이었으며, 이상한 나라였고, 심지어는 거울이었다. 아마도 북녘의 ‘어떤 나’ 역시, 남녘에 관한 자질구레한 기억을 안고 살아오지 않았을까 나는 상상한다.

모든 사진은, 결국 과거를 보여주는 것이지만, 사진기에 담지 않은 기억 속의 장면까지 보여줄 수는 없다. 나는 비교적 ‘오늘날’이라고 부를 수 있는 시점에서 북녘에 관한, 많지도 적지도 않은 장면을 수집해 왔다. 그리고 이것들을 정리하면서 얼토당토않은 세 개의 장으로 분류를 시도해 보았다. 순전히 자의적이며,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관념의 발현임을 먼저 실토한다.

1장 ‘펼쳐들다’
는 북한사회가 보여주고 싶은 장면의 일단을 제시한다. 일사불란하고 화려한 단결이 춤을 춘다. 북조선식 종합예술의 긍지와 신념, 경이가 펼쳐진다. 나는 부제를 ‘질서의 이면’이라고 달았는데, 그것은 숨은 그림 찾기로 드러나는가 하면, 모습을 저 너머에 감추고 있기도 하다. 여기서 사진은 질서의 표면을, 그것도 매우 협소하게 보여주므로, 이면을 읽어내는 건 그대의 몫이다.

2장 ‘스며들다’
는 북한이라는 공간을 보여줌과 동시에, 나와 비슷하거나 다른 목적으로 그 공간을 탐색하는 이들의 풍경을 담고 있다. 남한사회에서 이제 사진기는 사회구성원임을 증명하는 신분증의 역할을 하는 듯하다. 북녘을 방문하는 1백 명의 이방인들이 1백 개 이상의 사진기를 소지한다는 사실은, 이들이 북녘공간에서 가장 왕성하게 벌이는 활동 가운데 하나가 사진찍기일지 모른다는 예견을 가능케 한다. 실제로도 그렇다. 각자의 사진기는 기념, 이해, 경험, 감시, 정보수집의 다양한 차원에서 대상을 겨냥하고, 방아쇠를 당긴다. 이는 모종의 의식儀式이기도 하다. 게다가 사진기는 외부인만의 전유물이 아니며, 내부인들 역시 이러한 의식에 동참한다. 가끔 사진기는 상대방에게 건네져 우호와 기념의 정을 나누는 가교의 역할마저 담당한다. 이때 서로는 기꺼이 상대방의 사진사가 되어준다.
언제라도 다시 올 수 있는 곳이라면, 거룩한 의식을 잠시 미룰 수도 있으리라. 허나 북녘 방문은 늘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경험법칙을 상기시킨다. 그러므로 ‘찍는 의식’은 미룰 수 없는 의무이자, 이 금단의 땅을 밟았다는 유일하고 거부할 수 없는 증인이 되어줄 것이므로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 된다. 잠시 상상해 보자. 이런 곳에서 사진기를 들이대지 않는 자는 얼마나 생뚱맞을 것인가. 언젠가 수전 손택은 냉전시기 중국을 방문했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 “당신은 왜 찍지 않느냐”는 것이었다고 회상했다. 이런 곳에서 사진은 그냥 ‘찍는 것’이 아니라, ‘찍어야만 하는 것’이 되고 만다. 나는 2장을 통해 북녘이라는 낯선 시공간을 제시함과 동시에, 그 낯선 공간에 스며든 이들이  취하는 행동양식을 단편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다. 각자의 사진기에 담긴 장면들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또 어떻게 공유되고 유포되고 기념되었는지는 그냥 상상해 볼 뿐이다.

3장 ‘말려들다’
는 북한이라는 거대상징이 남한에서 어떻게 재현, 제시되는가에 대한 관심을 담고 있다. 이는 몇 년 전 전시와 출판으로 내놓은 바 있는 ‘분단의 향기’ 연장선이기도 하다. 이 장면들은 아마도 북조선으로서는 차라리 외면하고 싶은 향취를 풍길지 모른다. 하지만 이 장면들 속에 뭔가 논의의 지점이 꿈틀대고 있을지 모른다고 나는 생각해 왔다. 간단치 않은 고민과 과제가 숨어있다. 눈을 질끈 감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면, ‘바라보는 것’이야말로 어떤 시작의 출발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9. 의심의 자유

어쨌든, 이 작업은 ‘북한 바라보기’다. 전적으로 북한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정면성을 취하지만, 사실은 우회로였다고 나는 말하고 싶다. 북한이라는 우회의 길을 걸어, 내가 서 있는 곳은 결국 ‘이 땅’이고, 고민들이 똬리를 틀고 있는 지점 역시 ‘이 곳’이다. 나는 세 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번 작업의 말미에 이렇게 적었다.

“너는 나의 거울이며, 나 또한 너의 거울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너 보기는 나 보기이며, 나 보여주기는 너 보여주기다. 북한 바라보기는 결국 남한 바라보기일 수밖에 없다.

사진으로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대단치 않다는 것을 안다 하더라도, 그것이 어떤 고민의 실마리는 되어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아직은 남아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수전 손택의 말을 다시 음미해본다.

“우리가 세계를, 카메라가 기록한 내용 그대로 받아들일 때, 그것은 우리가 사진을 통하여 세상을 알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사실은 ‘이해한다’는 것과는 정반대이다. 이해한다는 것은 세계를 바라보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데서 출발하는 것이다. 이해의 가능성은 ‘NO’라는 말을 할 수 있는 능력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엄격하게 말해서 사람들은 단 한 장의 사진으로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가 없다.”

NO라고 말할 수 있는 자유, 의심의 자유….
NO라고 말할 수 있는 능력, 의심의 능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