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숙한 수상소감

  과분한 격려와 축하에 잠시 멍했습니다. 하루를 보내면서, 이것이 나에게 무슨 의미일까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누군가 그러더군요. “국가가 벌인 못된 짓들을 시시콜콜 쫓아다니며 욕을 해댄 작업을, 국가가 운영하는 미술관에 번듯하게 전시해놓은 꼬락서니가 말 그대로 모순은 아니냐”고요. 맞는 말입니다. 한 때, 제가 새 수첩을 사면 맨 앞에 써놓곤 했던 문구가 이랬습니다. … “모순들과 함께 작업하는 것은 그…

다행이지만, 화가 난다. 몹시도

    그해 봄, 열한 분의 열사를 만났다.   그해 봄은 이른바 ‘열사정국’이라 불린다. 이제 막 어른이 되었는데, 나의 삶에 간섭이란 없을 것만 같았는데, 봄부터 죽음이었다. 아니, 죽임이었다. 1991년 오월, 한 청년이 백골단의 쇠파이프에 맞아 삶을 잃었다. 명색 국가의 수족인 경찰이 죽으라고 때렸겠는가만, 죽도록 때린 건 사실이었다. 타살이었다. 실수 따위가 아니었다. 허나 국가의 대답은 어떠했던가.…

강아지들에게 안녕을 빈다고요?

      1. 시월의 마지막 날, 한 노동자가 세상을 버렸다. “배고프고, 힘들었다.” 그가 남긴 말이었다. 시월의 마지막 날은 1963년이 아닌, 그렇다고 1983년도 아닌, 2013년 시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그의 일터는 영세공장이 아닌, 부도직전의 쓰러져가는 회사도 아닌, 굴지의 글로벌 기업 어쩌다가 우리에게 ‘또 하나의 가족’이 되어버린 수퍼자본 ‘삼성’이었다. … 노동자 최종범의 죽음은 오늘의 노동이 어떤 지경인지를…

더위가 흐르는 풍경….

      사람이야말로 사람을 비참하게 하지만, 더위도 사람을 그리한다. 하지만 이것은 더위가 만든 사람의 풍경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 더위의 풍경. 내가 휘두른 주먹에 내가 맞아 휘청대는 꼬락서니. “지구 평균기온이 3도 오르면 양서류 전멸, 포유류 반토막”이라는 경고가 뚫린 땀구멍으로 흐르는 말복의 저녁. 북한산 건너 작은 절의 배부른 견공보살은 살기 위해 말복을 견디는 게 아니라, 살리기…

제목만큼 쉬운 것도, 어려운 것도 없다네

종이매체와 온라인매체에서 ‘제목뽑기’는 참 다르다. 두 매체 모두에서 제목은, 기사내용의 집약일 뿐만 아니라 미끼로써 기능한다. 하지만, 그 정도가 다르다. 종이매체에서 제목이 ‘간판’의 역할에 좀 더 충실하다면, 온라인매체에서 제목은 ‘미끼’의 역할에 더 충실하려고 하는 것 같다. “온라인 기사는 제목 장사가 반이상”이라는 자조섞인 푸념은 정확하게 매체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제목을 둘러싼 글쓴이와 편집부의 보이지 않는 갈등도 온라인매체에서 더 심하지…

너의 갈비

2003 서울 돼지갈비야 가끔 먹으며 보았고, 고갈비야 드나들던 실비집서 보았으며, 소갈비야 가뭄에 콩 나듯 귀하게라도 보았다만, 내 갈비야 목욕탕 거울에서 징그럽게 보았다만, 네게도 갈비가 있었구나, 처음 보았다, 네 갈비를, 쥐갈비를. 너를 닮은 대통령이 시장님이던 시절, 그분이 눈독 들이던 청계천 자락, 쓰러져가는 삼일아파트 옥상에서 나는 너를 만났지. 처참한 네 시신 위에 거적대신 셔터소리를 덮어주었던 내가, 돌이켜…

정말이지 절망스런, 하지만 희망버스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이미지들을 머릿속에 넣은 채 우리들은 살아간다. 낱장의 어떤 사진들, 그것들이 가진 무게는 엄청난 낱장의 집적이자 흐름인 영화에 비하면 참으로 보잘 것 없지만, 이미지를 밀어내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영화와 달리 ‘멈춰서 버팀’으로써 자신을 각인시킨다. 이를테면 사인처럼 흐르지 않고 도장처럼 꾹 찍힌다. 머릿속에 찍힌 숱한 도장들은 대부분 분실된다. 그러므로 어떤 것들은 살아남는다. 그것은, 그것이…

이의 피

머리를 자른지 아직 반년이 차지 않아 망설였지만, 반년을 꼬박 지켜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자전거를 마구 밟아주었더니 어느새 여성회관 앞에 서 있었다 머리를 잘라 달랬는데 이번에도 아주머니는 머리털만 자른다 이번에도 나는 죽을까봐 항의하지 않는다 머리 기르느라 힘드셨겠어요 힘들긴요, 그냥 가만 내버려 뒀을 뿐입니다 이거 파마하신 거예요? 아뇨, 스스로 물결이 이네요, 어쩔땐 물살이 거세 골치가 아프죠 예쁘게 웨이브졌는데, 자르기 아깝다 아깝긴요, 자르고 나면, 어느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