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 vs 5.16
지난해, 어떤 분들이 줄기차게 외쳤던 ‘준비된 여성대통령’의 의미를 곱씹어 본다.
그때는 후보였기에 준비된 것처럼 보여야 한다는 강박도 있었으리라. “준비가 덜 되었다” 고백하는 후보에게 “솔직해서 좋다”며 격려표를 던질 유권자가 있겠는가. 사람은 누구나 한 줌 덜떨어짐을 갖춰야 비로소 사람일진대, 대통령 후보라는 자격은 그걸 숨겨야만 표를 얻는 존재부정의 자리. 멸균된 바 없다는 걸 스스로 알고 유권자도 알았지만, 그는 멸균됐다 말했고 유권자도 고개를 끄덕였다. 결과는 51.6%의 득표, 당선이었다.
우리의 공화국이 정당정치와 대의정치에 기반하고 있으니, 그의 당선은 정당하며 축하받을 일이다. 아니 그럴 뻔했다.
“준비됐다”는 그 선언이 허풍이어서가 아니다. 대통령을 두 번 해보는 게 아니요, 왕년에 ‘사실상 퍼스트레이디’였다 해도 인형이었을 뿐인데, 집권초기 시행착오는 비판하면서도 인정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문제는 ‘준비의 의미’가 달랐다는 데 있다. 그의 당선을 ‘준비했던’ 이들의 활약상이 뒤늦게 드러나고 있다. 국가안전에 관한 최고수위 작전을 책임지는 국정원 수장 원세훈이 요원들에게 하달한 지침이 무엇이었나. 국내정치현안 개입, 국정홍보, 4대강사업 찬양, 이른바 여론조작이었다. 대북공작을 내남공작으로 펼쳤다. 댓글요원들이 발각되자 ‘인권오리발’을 내밀었다. 박근혜 후보의 일성은 “불쌍한 여성의 인권을 짓밟지 말라”는 것이었다. 화답하듯, 서울경찰청장 김용판은 한밤 기자회견을 열어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무혐의였다. 그의 집요한 수사방해가 이제야 드러나고 있다. 원세훈은 도피하려다 제지당했다.
이것이 ‘준비’였나? 국정준비가 아니라 공작준비. 하지만 당신들의 준비는 국민이 비준해 줄 수 없는 준비가 아닌가. 그대의 51.6%에서 자꾸 5.16 ‘혁명 또는 쿠데타’의 준비된 향기를 맡는 건 내 지나친 후각의 탓일까.
<씨네21> 사진의 털 #109 _ 30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