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이라는 김치
“만약에 김일성이 없었더라면, 무슨 맛으로 종북을 까댈까 / 마르크스 마오쩌뚱 널 유혹해도, 김일성 없으면 왠지 허전해 / 김일성 없인 못 살아 정말 못살아, 너는 너는 그를 못 잊어 / 독기로 보나 욕망으로 보나 빠질 수 없지, 입맛을 바꿀 수 있나 / 만약에 김정일이 사라진다면, 무슨 혐의로 간첩을 잡을까 / 소련공산당 중국공산당 다 차려놔도 로동당 빠지면 왠지 허전해 / 김정일 없인 못 살아 정말 못살아, 통치하기 너무 어려워 / 주거니 받거니 서로서로 총질 해대도, 뒷간에서 슬쩍 웃지요!”
해방이후 한반도 정치사를 곰곰이 돌이켜보면, 김일성이야말로 남북한 정치의 만능해결사가 아니었나 하는 황홀한 결론 앞에 서게 된다. 김일성은 한 번도 죽은 적이 없다. 박정희가 아직 살아 숨 쉬는 것처럼. 그들은 여전히(!) 한반도의 불사신이며, 남북한 정치의 작동원리를 독점공급하는 시장지배자다. 권력이 위태로울 때마다 서로는 서로에게 얼마나 든든한 적군이 되어주었던가. 남한정치의 주요 고비마다, 북한이 어떻게 훼방 아닌 훼방, 협력 아닌 협력으로 남한 정치를 도왔는지 되짚어 보면 그들이 정녕 한통속은 아니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경악할만한 폭파사건, 간첩단사건, 납치사건의 사이클과 총선 대선의 사이클이 절묘하게 겹친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국시를 ‘통일’이 아닌 ‘반공’으로 설정한 이상, 남한 정치는 “만약에 김치가 없었더라도” 잘 굴러갔겠지만, “만약에 김일성이 없었더라면” 심각한 난관에 봉착했을 것이다. 김치 없는 한식이 무효이듯, 김일성 없는 한반도 정치도 아직까지는 무효다.
민주사회의 국가기관이 지켜야 할 엄정한 원칙을 저렴한 댓글로 폐기해버린 ‘국정원 심리정보국’ 댓글공작원들의 꼬락서니를 보자. 대선기간에 야당을 저주하고, 여당을 찬양하는 자칭 ‘대북심리전’을 남한시민을 대상으로 전개한 그(녀)들의 활약은 ‘빨갱이 잡겠다는데 법률위반이 대수냐!’는 무도함으로 표출됐다. 전형적인 김일성 중독 증세다.
화답일까. ‘제3의 김일성’ 김정은이 은유의 핵폭탄이 아닌 직설의 핵폭탄을, 새정부 내각 발표 하루를 앞두고 터뜨렸다. 우연의 일치겠으나, ‘누군가들’에겐 얼마나 고마운 훼방이자 협력일까.
시인 김수영은 일찍부터 ‘우리 안의 김일성’을 보았다. 1960년에 썼으나 죽기까지 발표하지 못했던 <김일성 만세>는 2013년의 우리를 해설한다.
“김일성 만세 /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 인정하는 데 있는데 /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 언론의 자유라고 조지훈이란 / 시인이 우겨대니 / 나는 잠이 올 수밖에 / 김일성 만세 /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 인정하는 데 있는데 /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 정치의 자유라고 장면이란 관리가 우겨대니 / 나는 잠이 깰 수밖에”
김일성은 김치다. 수면제와 각성제로 버무린 이데올로기의 김치.
20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