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줄은 몰랐다는 듯, 미안해!
김근태 전 의원이 삶 너머로 돌아가셨을 때, 우리 사회는 여러 생각을 혹은 기억을 쥐어 짜내느라 호들갑스러웠던 것 같다. 어떤 이들은 김근태를 김근태로 기억해 냈지만, 어떤 이들은 이제야(죽은 뒤에야!) 김근태를 새롭게 보게 됐다는 식이었다. 평범한 줄만 알았던 사람의 비범함을 발견이라도 한 것 같은 호들갑. 우리가 김근태를 찾아냈어! 알고 보니 훌륭했어!
물론 그것은 일종의 ‘후회’ 같은 것이기도 했고, 고마움이나 미안한 마음의 표현이기도 했다. 하지만 버스는 떠났는데, 버스가 떠난다는 건 마치 사과가 떨어진다는 만유인력의 법칙만큼이나 평범한 것인데, 마치 그럴 줄은 몰랐다는 듯, 손수건을 붙들고 바르르 “미안해!”를 외친들 뭣할 것인가.
김근태는 이상하게도 평범한 사람이었다. 평범치 않은 삶을 살아온 그는 어쩌면 그렇게 평범한 사람처럼 보였던 것일까. 그는 늘 정치의 한복판에 있었다. 정치인이 아닐 때에는 정치적 탄압의 한복판에 있었고, 정치인일 때에는 번드르르한 의회정치와 정당정치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정치적 지랄발광의 시공간에서 그 또한 정치적 지랄발광을 해주어야 뭔가 박자가 딱딱 맞을 텐데, 그는 날카롭지도 계산적이지도 않아서 정치적이지 못했다. 지지자에게 카타르시스를 선물하기는커녕 답답증을 유발하는 미련한 아저씨였다. 독기 없는 정치인, 그에게 이 말은 칭찬을 빙자한 비난이었다. 물론 나는 어떤 김근태는 알고, 어떤 김근태는 알지 못한다. 하물며 김근태의 그림자에 또 어떤 김근태가 도사리고 있었는지는 알 도리가 없다.
뉴스를 통해 그의 죽음을 만나고 있는데, 상복 입은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아는 얼굴이었다. 불현 듯 어느 날, 어떤 사람들과 밥과 술을 곁들이던 자리가 떠올랐다.
그녀가 김근태 얘기를 꺼낸 게 아니었는데, 어쩌다 김근태 얘기가 나왔고, 그녀는 주로 듣다가 나중에야 자기 아버지란 사실을 부끄러운 듯 얘기해 주었다. 개판오분전 한국정치판을 신나게 씹다가, 거기에 김근태도 자유롭진 않을 거라 성토하다가, 그래도 그에게선 진심이 참으로 애매모호한 가치인 진심이, 이상한 호소가 느껴지는 ‘사실상 좋은 사람일 것’이라 술기운에 말했는데 왠지 미안했다. 하지만 그녀는 기뻐했다. 고문기술자 이근안 얘기가 혀에서 맴돌다 사라진 건 다행이었다.
누군가 삶을 등진 뒤에 그의 산 모습이 담긴 사진을 찾으려 애쓰는 건 우리의 오래된 습관이다. 언젠가 김근태를 인터뷰했고, 먼발치에서 여러 번 그를 봤으므로, 내게도 그를 담은 사진이 있으련만, 이상하게도 필름더미에서 그의 사진을 찾을 수 없었다. 기어이 찾아내야할 이유도 없긴 했다.
그러다가, 용산참사 3주기를 맞으며 그 사진들을 정리하다가 김근태를 만났다. 빗줄기가 내리치던 어느 날, 죽은 철거민의 가족들 뒤에 비옷을 입은 김근태가 조용히 앉아 있었다.
<씨네21> 2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