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맛, 피 비린내와 생선 비린내
내가 처음 강정마을을 찾았던 건 순전히 ‘돈’ 때문이었다.
4년 전 어느 날, 문정현 신부께서 전화를 걸어왔다. “제주도를 잠시 다녀올까 하는데, 함께 가지 않을 테야?” 비행기표를 끊어주겠다는 말에 홀딱 넘어가 그와 동승했다. 나 같은 ‘육지 것’에게 제주도는 언제라도 가보고 싶은 섬이오, 꿈과 낭만이 손짓하는 곳이었으니까. 허나 바다 건너라는 물리적 거리감과 무엇보다 만만찮은 교통비로 인한 심리적 거리감이 발목을 붙드는 ‘먼 곳’이었으니까. 공짜라니, 일단 가자.
공짜는 없었다. 문 신부는 내게 요청했다.
“알다시피 강정마을은 멀어. 해군기지문제가 기습적으로 마을을 덮치는 바람에 어려움이 많은 모양이야. 뭐라도 도움을 줘야할 텐데, 이렇게 먼 곳이니 자주 오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눌러 살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래서 ‘상단’을 꾸릴까 해.”
돈을 주고 싶다는 얘기였다. 위기에 처한 작은 마을의 문제를 알리는 동시에, 마을주민들이 처한 경제적 어려움을 덜어주는 사업을 해보자는 얘기였다. 쉽게 말해 고등어 감귤 장사를 하겠다는 통보였다. 이런, 잘못 걸려들었구나.
허나 다행히도 내게 요청된 일은, 호객행위가 아니라 사진이었다. 장사를 하려면 이른바 ‘찌라시’가 필요한 법. 그러므로 전단지에 들어갈 고등어와 갈치, 감귤과 한라봉 사진을 찍어달라는 말이었다. 나는 안심했다. 이렇게 잠시 상업사진가의 경력을 쌓는구나, 생각하니 우쭐한 마음마저 들었다. 제대로 된 ‘찌라시’를 만들어야 한다는 일념에, 알고 지내던 디자이너에게 최고 품질의 ‘꼬등어 찌라시’를 주문했다. “나도 공짜로 찍었으니, 당신도 공짜로 디자인하길 바라오! 다만 고품질의 찌라시라야 하오!”
디자이너의 조심스런 제안에 전단지는 폐기됐다. 대신 강정의 아름다운 풍광을 담은 작고 예쁜 탁상달력이 만들어졌다. 사진 덕분은 전혀 아니지만, 고등어 사업은 대성공이었다. 물건이 좋았고, 뜻이 좋았다. 값도 비싸지 않았다. 수익금은 오롯이 마을에 전달됐다. 피 비린 내가 아니라, 생선 비린내가 나는 돈이어서 좋았다. 돈의 맛에 주민들은 울먹였다.
멀어서 ‘돈이라도’ 돕고 싶다던 문정현 신부는, 마을상황이 험해지자 ‘몸이라도’ 던지겠노라 아예 강정주민이 되었다. 마을은 전쟁터가 되었다. 칠순 넘은 노 사제가 덩치 큰 용역에게 멱살 잡히고, 포구에서 떨어져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강정에서 싸우고 있는 숱한 평화활동가들은 너나없이 ‘문정현들’이다. 구럼비를 살려달라 호소했을 뿐인데, 지금까지 누적된 연행·구속자 수만 400여명, 빌어먹을 벌금만 3억원이다. 주민과 평화활동가들은 국가의 폭력에, 돈의 폭력에 신음하고 있다.
이들의 호소를 귀담아 듣기 위해, 힘내시라 격려하기 위해, 고등어 사먹고, 감귤 사먹고, 작은 후원금을 보낸 것이 잘못된 일일까? 계좌추적이란다. 부패계좌엔 손도 못대던 자들이, 눈물어린 후원계좌를 뒤지겠단다. 치졸하다. 잔인하다. 강정마을에서 국가는 양아치보다 나은 점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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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