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없다
12년 전의 어느 날, 나는 서점에서 책을 훑고 있었다.
말이 서점이지 근사한 카페와 갤러리, 아트샵과 음반매장, 액자공방, 정원까지 갖춘 고급문화공간이었다. 거기서 취급하는 책은 오로지 ‘예술’에 관한 것이었다. 그래서 이름도 ‘우리 안의 예술’, 아티누스(Art-In-Us)였다. 다양한 외국도록을 ‘맘편히’ 펼쳐볼 수 있었기에 자주 그곳을 찾았다. 그러던 그날, 못 볼 것을 보기라도 한 듯, 나는 책을 덮어 버렸다. 페이지를 넘기는 게 두려웠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다시 서점을 찾았고, 예의 그 책을 펼쳤다. 그리고 다시 덮었다. 그러길 수차례, 알량한 월급의 1/5이나 되는 거금을 주고 책을 사고야 말았다. 제목은 인페르노(Inferno), 우리말로 하자면 ‘지옥’이었다.
저자는 살아있는 전쟁사진의 신화라 불리는 제임스 나트웨이(James Nachtwey)였다. 사람이 어떻게, 죽지 않고도 지옥에 살 수 있는지를 그 책은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나를 힘들 게 한 것은, 끔찍한 살해의 풍경이 아니었다. 그것은 낡은 칼의 무덤이었다. 사탕수수를 베는 데 쓰는 농기구, 마체테(Machete)가 사람을 죽인 뒤 회수되어 거대한 왕릉처럼 쌓여있는 풍경이었다. 르완다에서만 어림잡아 50만 명이, 무기가 되어버린 농기구에 목숨을 잃었다. 하긴 낫은, 풀만 벨 수 있는 게 아니다. 그 멋스런 서점의 주인이, 한국현대사를 지옥도로 만들었던 전두환의 큰아들이라는 걸 안 건 한참 뒤였다.
4월의 봄 낮, 나는 아파트와 주택으로 빽빽한 신도시 언저리의 작은 언덕에 앉았다.
집에서 가끔 멍하게 내다보는 그곳이었다. 우리집 창가에서 이곳이 보이고, 이곳에 앉으면 우리집이 보인다. 아이들이, 아이를 죽였다. 겁이 난 아이들이 죽은 아이를 서랍장에 넣어두었다가, 늦은 밤 이곳에서 몰래 파묻었다. 삽을 구하지 못한 아이들은, 프라이팬과 망치로 흙을 팠다. 그게 될 일인가. 잘 파지지 않는 프라이팬을 원망하며, 그 어둡고 두려운 순간을 초래한 자신을 원망하며, 어떤 아이는 울었을 거라 나는 짐작해 본다. 운동하러 언덕에 올랐던 어른들은 “저런 후레자식들, 총살을 시켜야한다”며 “이놈의 빨갱이 세상!”을 한탄했다. 현장을 알리는 노란 폴리스라인이 바람에 부르르 떨며, 우리의 삶을 경고했다.
자정이 넘은 시간, 나는 다시 그 앞에 앉았다. 어둠속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그제야 학원을 마친 것일까. 아이들 한 무더기가 시끌벅적하게 올라오더니 휴대폰을 꺼내 ‘암매장 현장’을 찍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저장하고, 누군가는 카카오톡으로 전송했다. 아이들의 휴대폰에서 발사된 불빛은, 키득대는 찰칵으로 눈부셨다. 나는 신음했다. 아니 으르렁댔다. 보이지 않는 소리에 아이들은 기겁했다. 미친 듯이 달아났다. 아, 지옥이구나. 눈물이 쏟아졌다.
나의 창밖은, 이제 멍하게 바라보는 창밖이 아니다. 프라이팬이 파들어 간 자리에, 열여덟 소녀가 몰래 묻혔던 그 자리에, 꽃은 없었다. 하지만 내가 뿌려놓았다.
20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