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48호에서 이어짐)
“이봐요, 나는 영웅도 싫소.”
힘은, 홀로 서지 못한다. 외로움을 견디지 못한다.
오로지 휘두름으로 존재할 뿐이다. 고로 대상을 요구한다.
‘군’은 고전적 의미로도, 현대적 의미로도 ‘힘’ 자체였다. 적에 맞서기 위해 힘이 필요했고, 사실은 힘을 축적하기 위해 적이 필요했다. 하지만 힘이, 적을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다. ‘적의 생산’에는 이른바 ‘정치’가 필요했다. 적은 눈에 보여야 하지만, 사실은 안보임으로써 위협적인 것이고, 그런 적을 만들어내는 일이야말로 정치의 백미라 할 공작정치의 영역이니까.
‘군’이 정치에 뛰어든 경우는 동서고금에 수두룩하다. 특히 한반도는 남북한 모두 장군정치의 늪에서 숨 끊어질 뻔했고, 여전히 혼수상태다. 군이 모든 가치를 제압하는 이른바 ‘선군정치’가 북녘에만 있을까? 남녘에도 선군정치의 망령은 배회한다. 이른바 ‘안보’의 이름으로. 총선을 앞두고 군은 “정치에 간섭하려는 게 아니라 애국하는 마음으로” 장병정신교육을 강화했다. 강정마을에는 이른바 ‘애국노병’들이 연일 쳐들어와 “빨갱이 축출”을 외쳤다. 만취한 해군대령은 마을회장에게 전화 걸어 “북한 김정은을 위해 열심히 일하라”고 격려했다. 18분 31초의 통화는 개처럼 아름다웠다.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이라 불러달라는 군사기지의 아름다운 흉측함이 묻어났다.
위원장님! 존경하는 강동균 위원장니~임! (말씀하십시오.)
존경합니다. 정말로 존경하고. 대승적으로, 대승적으로…. (뭐가 대승적입니까, 여봐요 홍동진 대령!)
아이 저, 홍동진 아니라니까. 위원장님이야 한 번 죽지만, 자녀를 생각해 보세요. (내가 지금 애들을 위해 이러는 거예요.)
강동균씨! 내가 인권위원회에 들었던 사람이야, 그렇게 하지 말라고! (당신같은 사람이 인권위원회 들면 우리나라 망해요. 아시겠어요?)
결정만 하면 당신은 영웅이오 영웅, 네? 평화마을 영웅이 될 수 있다고! 천사같은 사람이란 거 아는데, 왜 누가 옆에서 그러는 거요. (지금 나를 포섭하려는 겁니까?)
포섭? 포섭이란 용어는, 우리가 쓰는 용어가 아니고, 저 북한괴뢰동무들이 쓰는 얘기지, 북한놈들이 쓰는 그거지. (포섭이란 단어가 우리나라 사전에 없습니까? 왜 자꾸 북한과 연결시켜요? 홍동진 대령, 정신 차리시오!)
나는 홍동진이 아니고, 누군지 모르겠지만, 대한민국 헌법을 존경하는 사람이기 때문에….(지금 해군기지를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이라고 대국민 사기를 치는 거 아니오!)
홍동진이 개새끼고 X새끼고 모르겠지만, 참말로 네? 한번 좀 대승적으로 판단 좀 해주세요. (대승적인 게 뭡니까? 이렇게 지역주민 억압하면서 건설하려는 해군기지가 대승적이에요?)
허, 강정마을 위원장, 야, 강동균이! 하, 이거 진짜 고지식하네. 이 시대 영웅이 될 수도 있다는데. (이봐요, 나는 영웅도 싫소. 그냥 평범하게 살아가는 일반시민이 되고 싶소. 그냥 땅이나 파고 그냥 열심히 살아가는 농사꾼이 되고 싶다고요. 그걸 당신네가 다 망치고 있잖아.)
20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