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의 잠 못 이루는 밤
폭약사용이 승인됐다는 비보가 날아든 그날 밤, 마을은 깊은 침묵에 빠져들었다. 사람들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길가에 서성이는 이들이 적지 않았지만 다들 말을 아꼈다. 불안은, 떠들수록 증폭될 뿐이니까.
불현듯 6년 전 봄, ‘여명의 황새울’ 작전을 앞둔 대추리의 밤이 떠올랐다. 그때도 사람들은 밀려드는 불안을 달랠 수 없어 밤새 마을을 배회했었다.
무작정 걷다가 문정현 신부님 댁에 닿았다. 자정 무렵인데도 칠순의 노 사제는 잠 못 이룬 채 시름에 젖어 있었다.
“미칠 지경이야….”
매향리에서, 대추리에서, 용산에서, 이곳 강정에서 숙연하게 미사를 집전하던, 그러면서도 공권력의 폭력 앞에선 성난 호랑이처럼 포효하던 사제의 입에서 “미치겠다”니, 신부가 미쳐도 되는 것인가, 하지만 그 말씀이 너무 슬프게 귀를 뚫고 들어와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어쩌면 그는 예수를 원망하는지도 몰랐다. 물론 그의 예수는 성경에는 없는 예수이기도 했다. 고난 받는 이들이야말로 그가 섬겨온 예수였다.
노 사제는 냉장고에서 맥주 한 병을 꺼내 왔다. 한숨을 안주삼아 잔을 비웠다. 숙소에 돌아오니 새벽 1시였지만 여전히 잠은 오지 않았고, 새벽 3시, 비명처럼 사이렌이 울렸다.
“주민여러분, 화약고에서 폭약이 운송되고 있습니다. 속히 집결해 주십시오!”
모두들 공사장으로 달려갈 때, 사제들은 따로 모였다. 어둠을 뚫고 포구 쪽으로 뛰었다. 구럼비를 에워싼 거대한 장벽 앞에 서자, 누군가 사다리를 가져왔고, 십여명의 사제가 담을 넘었다. 온몸 던져 폭파를 막겠노라는 각오였다. 발각되지 않기 위해 흩어져 바위 밑에 몸을 숨기고 추위를 견디며 날이 밝길 기다렸다.
동이 틀 무렵 저 건너 바다에서 누군가 나타났다. 엔지 젤터, 벤자멩 모네, 최성희였다. 그들은 카약을 타고 구럼비로 건너왔다. 그랬지만, 다시 철조망이 그들을 가로막았다.
엔지가 파란색 보자기를 펼쳤다. 우주에서 내려다 본 지구였다. 언젠가 그녀는 “이 행성에 사는 한 우리의 모든 문제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말했다. 사진 안에 한반도는 보이지 않았다. 보였다면 포도알 만큼 작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제주도는 점, 강정은 먼지, 이곳에 선 우리들은 아무 것도 아닐 만큼 미약한 존재일 것이었다.
이 미약한 존재들이 모인 이 작은 마을에, 어떻게 이토록 거대한 오류와 무도한 폭력이, 이토록 대단한 안보와 애국이, 이처럼 깊은 시름이 소용돌이 칠 수 있는지, 눈앞의 현실이 갑자기, 눈물겹게 믿을 수 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무엇이 이들을 여기로 이끌었는가. 무엇이 우리를 만나게 하는가.
모두는 끌려갔다. 누군가는 맞았고, 누군가는 목이 터져라 외쳤으며, 누군가는 울었다. 누군가 구속됐고, 누군가는 추방당했다. 감옥에 갇힌 영화평론가 양윤모는 40여일째 식음을 전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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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3
* 영화평론가 양윤모 선생은, 3월 20일 오후 보석으로 풀려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