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어때요, 라고 물으면,
그걸 왜 내게 물어요, 라고 답한다
이를테면 선수를 빼앗긴 셈이었다. 멈칫하는 사이 그가 먼저 물어왔다.
그의 물음은, 사실은 내가 그에게 물으려던 것이었다. 다만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고, 말하지 않아도 들릴 것 같아서 꺼내지 않았을 뿐.
그의 물음은 이상하게도 울음처럼 들려서, 묻는 건지 우는 건지 헷갈렸다. 그래서인지 엉뚱한 대답을, “그걸 왜 내게 묻느냐”는 어정쩡한 반문을 던지고 말았다.
시인이 어때요, 라고 묻는데, 그걸 왜 내게 물어요, 라고 답하다니. 엉터리 시인의 엉터리 친구.
살인과도 같은 해고를 멈추라며 35미터 크레인 위에 스스로를 가두고 309일을 목 놓아 외친 끝에 김진숙 지도위원이 살아 내려왔던 11월의 어느날, 송경동이 전화를 걸어왔다. 전화기에 ‘여섯번째 송경동’이라는 이름이 떴다.
지난 몇 년, 내 전화번호가 한 번 바뀌는 사이, 그의 전화번호는 여섯 번이나 바뀌었다. 그럴 수밖에. 그는 현상수배범이었으니까.
크레인에 매달린 김진숙을 지키기 위해 지상의 싸움을 선동한 죄, 절망의 시대에 감히 희망을 떠벌린 죄, 고상하게 시 나부랭이나 끼적댈 일이지 함부로 성명서를 써댄 죄가 결코 작지 않았다. 그의 죄목은 단박에 작성된 것이 아니다. 대추리에서 그가 벌인 극렬행동을 떠올리자. 콜트기타 해고노동자를 뭐라 선동했던가. 용산참사 철거민에게 내민 연대의 감언이설은 어떻고. 기륭전자 해고노동자를 쓸어버리려던 포클레인을 막아서고 그마저 점거해버린 간악한 용역집행방해죄는 사장님을 얼마나 슬프게 했던가. 반성은커녕 희망버스를 주동하고, 국가기간산업육성에 불철주야 매진하시는 한진중공업 회장님을 모욕했다. 자본님의 준엄한 해고칼춤에 가래침을 뱉었다.
12월, 철창에 갇히기 전에도 그는 갇혀 지냈다. 김진숙이 35미터 공중에 떠 있을 때, 그 또한 35미터가 넘는 서울의 어떤 건물에 갇혀 생활했다. 출두하기 전날 밤, 거기서 그를 만났다. 뜻밖에도 돈에 파묻혀 있었다.
‘희망버스 주유비’라 적힌 모금함에서 쏟아진 백원짜리, 천원짜리, 만원짜리를 침 발라가며 세고 있었다. 돈 때 묻은 시인, 퉁퉁 부은 그의 더러운 발목이 눈을 붙잡았다. 포클레인에서 떨어져 바스라졌던 발목이었다. 이튿날 그는 철창에 갇혔다. 구속영장실질심사를 청구했지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는 이제 전화하지 않는다. 나도 만나러 가지 않는다. 어때요, 라고 물어오면, 그걸 왜 내게 물어요, 라고 답할 자신이 없다.
시인은 말을 읽어주는 사람이 아니라 말을 보여주는 사람이다. 시인은 지나간 말로, 다가올 말을 보여준다. 보이는 말, 그것이 시다. 송경동은 자신이 내뱉은 어제와 오늘의 말로, 감옥에 갇힐 내일의 말을 보여주었고, 그 말을 가두는 국가를, 쇠창살이 되어버린 우리들을 이렇게, 보여주고 있다.
2012.1
<씨네21> www.cine21.com
뜻밖에도 돈에 파묻혀 있었다.^ㅡ^
돈 때 묻은 시인,
전혀 고상하지 않은 시인,
툭하면 철창에 갇히는 시인,
행동으로 시를 쓰는 엉터리 시인,
언제쯤이면 이런 말도 안되는 엉터리 시인이 사라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