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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 피

머리를 자른지 아직 반년이 차지 않아 망설였지만,
반년을 꼬박 지켜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자전거를 마구 밟아주었더니
어느새 여성회관 앞에 서 있었다

머리를 잘라 달랬는데
이번에도 아주머니는 머리털만 자른다
이번에도 나는 죽을까봐 항의하지 않는다

머리 기르느라 힘드셨겠어요
힘들긴요, 그냥 가만 내버려 뒀을 뿐입니다
이거 파마하신 거예요?
아뇨, 스스로 물결이 이네요, 어쩔땐 물살이 거세 골치가 아프죠
예쁘게 웨이브졌는데, 자르기 아깝다
아깝긴요, 자르고 나면, 어느새 길어버리던 걸

반년 만에 찾아가면
미용실 안은 온통 새사람이다
연수생들은 여기서 최종 실습을 마치고 각자 갈 길을 떠난다
누군가는 가게를 차리고, 누군가는 취직을 하고, 또 누군가는….

칠년 단골을 알아봐 주는 이는
경상도 사투리가 묘하게 세련된 우리 실장님
사납게 물결치는 긴머리 남자를 맡아 긴장한 연수생에게 한 말씀
응, 자기야, 우리 사장님은 바빠서 자주 못오시니까 걱정말고 시원하게 잘라 드리세요, 상고 스타일 할 줄 알지? 그걸로 

어릴 적,
어머니는 나를 이발소에 보내기 전에 참빗으로 머리를 빗어주시곤 했다
누구나 이가 있던 시절이지만, 머리 자르는데 이가 너무 많으면 창피하니까….
그 촘촘한 참빗 그물에 걸려 후두둑 떨어진 통통한 녀석들이 살겠다고,
살아보겠다고 아둥바둥 누런 종이 위를 필사적으로 기어가는데,
귀를 바짝 갖다대면 사각사각, 비명의 몸무림 소리가 들리는거야
매정하게도 손톱으로 꾸욱 누르면, 톡!하고, 찍!하고, 붉은 피가 터지는데,
그리하여 누런 종이가 빨갛게 물드는데, 그게 얼룩같지 않고, 꽃잎같은 거 있지
이게 다 네 피 빨아먹은 거야, 라고 말씀하셨지만
나는 그게 내 피 같지 않고, 이의 피 같은 거 있지

지금 생각해도 어머니,
그 피는 아들이 흘린 피가 아니라, 이가 흘린 피입니다
이의 생각도 제 생각과 같을 거예요

뭉텅뭉텅 잘려나가는 머리카락을 가만가만 내려다 보니 
흰머리가 늘었다
흰머리가 늙었다
흰머리야, 흰머리야 너만 늙어라

싹둑싹둑 잘려나간 머리카락들이 생각들이라면 좋겠다, 고 나는 생각한다
머리 안에 살면서도 
머리를 못잡아먹어 안달난 나의 생각들
손톱으로 꾸욱 누르면, 톡!하고, 찍!하고, 붉은 피를 흘려줄래?

칠년째, 
헤아리니 어느새 팔년째,
이천원을 건네고,
감사하다는 소리까지 듣고 나오니

자전거가 사슬에 묶인채
찍소리도 못한채
가만히 나를 기다리는 체, 하고 있는 거 아니겠어
고마워, 미안해, 그래도 밟아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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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Comments

  1. 최윤정 says:
    2011년 4월 11일 at 6:33 오후

    이젠 여성회관에서 앞에서 상봉하겠네요.^^

     Reply
  2. 철수 says:
    2011년 4월 18일 at 9:03 오전

    머리가 그랬던가요? 항상 멋있는 분이라
    참빗 이야기 보다가 옛 생각이 나서…..
    할머니집에 가면 토방에 뎁혀놓은 세수대야 물로 낮짝을 씻겨요 그리고 나면
    이빨빠진 참빗으로 머리를 훓어내리면 떡진 머리카락이 안빗겨져서 머리가 딸려가고 또 그느낌이 싫어서 도망 댕겼는데 아… 그놈의 머리카락이 안끊어질려고 발버둥 치는 소리 생각난다능
    다빗고 나면 할머니가 양 엄지손톱으로 멀 막 터쳐 흐미

     Reply
  3. 철수 says:
    2011년 4월 22일 at 7:04 오전

    철수가 또 있나보군요 힌트? 저 아래

     Reply
  4. 모모 says:
    2011년 4월 25일 at 2:44 오후

    아이참~안그러고 싶은데 뭔가 귀엽단말이예요..ㅋㅋ
    난 이상한 아이인걸까요? -.-;
    알고보니 마루타해주고 2천원이나 도로 낸거였어…어쩐지…전 집에서 자른건 줄 알았어요!ㅋㅋ

     Reply
  5. 근데 says:
    2011년 4월 25일 at 2:49 오후

    이피가 니피냐 내피냐…이거 상당히 철학적 질문인데요?
    내피를 빨아먹고 니몸에 만든 그 피가 니피냐 내피냐…..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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