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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너를 의심케 하는 사진의 회색지대 _ 김태현 2006.12

노순택을 에둘러 읽다

인터뷰를 위해 작가 노순택을 만난 날은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이었다. 영하로 갓 내려간 온도에 매서운 바람이 더해져 체감온도가 끝없이 곤두박질치는 그런 날이었다. 바람을 피해 행신동 GS마트 정문 안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그가 나타났다. 바람을 가르고 자전거를 탄 채.
사진가 노순택은 거리의 작가다. 그가 사용하는 조명은 태양광이고, 그의 스튜디오는 종로이거나 시청 앞 광장이거나 평양의 거리이거나 매향리거나 대추리다. 그리고 그의 사진의 대상은 거리에서 태양 빛을 받으며 무엇인가에 열중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투쟁하거나 진압하거나 사랑하거나 놀러 온 그런 사람들.

세상과 만나다

거리는 주변의 상점들과 간판, 노점상, 교통 표지판, 버스 정류장, 지나가는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수많은 의미로 가득 차 있는 공간이다. 그리고 물질에 기반을 둔 의미들은 여러 가지 사회적인 맥락과 국가 행정적인 맥락, 자본주의적 맥락 그리고 문화적인 맥락이 교차하여 만나는 지점에서 구체적인 ‘장소’의 정체성으로 흡입된다. 그래서 이 ‘장소’로서의 공간은 “물리적인 측면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지니고 있는 정체성과 인식을 형성하는 사회적 의미들을 지니고 있”다. 지하철 2호선 잠실역의 자본적 공간과 명동성당 앞 거리의 역사적 정체성이 바로 그런 것들이다.

하지만 의미와 정체성의 공간적 재현체인 ‘장소’는 불안정한 공간이다. 외부로부터 강력한 의미가 미끄러져 들어오는 순간, 그곳을 가로지르던 권력의 속성이 변화하는 순간, 그 곳을 지배하던 경제적 사슬구조가 끊어지는 순간, 그 곳을 관리하던 행정적 제도가 와해되는 순간, 지금의 ‘장소’는 더 이상 바로 이전의 ‘그 곳’이 아니다. 불멸의 공간처럼 완고해 보이던 ‘장소’는 그 곳을 점유해 들어오는 사람들에 의해 순간적으로나마 변화하기 마련이고, ‘장소’의 의미와 정체성을 변화시킨 사람들은 바로 그 곳에서 투쟁하고 노래하고 소리친다. 우리의 역사가 그러했듯이 말이다.

노순택의 사진을 유심히 보다보면 그가 자신의 작업실로 선택하고 있는 거리는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을 떠받히고 있는 무의미한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라 어떤 목적을 가지고 모인 사람들이 점유한 이데올로기적 ‘장소’인 것을 알 수 있다. 「애국의 길」의 서울 시청 앞 광장이 그러하고, 「아이들은 열네 살이었다」의 미대관 앞 거리가 그러하고, 「피양피양….악마의 나라」의 평양 시가지가 그러하고, 「얄읏한 공」의 대추리가 그러하다. 노순택은 카메라를 들고 그 ‘장소’에 모인 사람들이 만들어 내고 있는 역사적인 ‘사건’과 대면하고 있다.
현재 그는 역사적인 사건과 대면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이러한 일이 작가로서의 길에 들어서면서부터 시작된 것은 아니라고 한다.

“대학에 입학한지 얼마 안됐을 때다. 여느 때와 같이 사람들하고 잔디밭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누군가 달려와서 빨리 연세대학교 병원엘 가야 한다고 했다. 어느 학생이 경찰에 맞아서 죽었는데 영안실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 시대는 노동자가 억울하게 죽어도 경찰이 영안실까지 들어와 폭력적으로 시신을 탈취하던 시대였다. 그때 같이 있던 사람들 하고 연대병원에 가서 밤새 영안실을 지켰다.”

그 이후로 동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그러했듯이 노순택도 역사적 ‘사건’들과 대면하기 위해 거리로 나서는 일이 잦아졌다. 학보사 편집장에 대학 언론협의회 간부까지 거치다 보니 ‘사건’과 ‘거리’는 언제나 그와 함께 했다. 하지만 노순택이 자신의 손에 카메라를 들고 거리에서 역사적 사건과 대면하게 된 것은 그 후의 일이라고 한다.

“학보사 1학년 수습기자 때 잠깐 사진을 찍은 적은 있지만 2학년 기자로 올라가면서 볼펜기자 생활을 했다. 사진에 대한 테크닉을 배운 건 군대 제대하고 나서다. 사진관을 운영하던 삼촌 가게에서 일을 도와 드리면서 사진에 많이 익숙해졌다. 그 때 이후로 <교수신문> 기자로 일하게 됐는데 작은 신문사다 보니 기자가 기사도 쓰고 사진도 찍어야 했다. <교수신문>을 그만 두고 잠시 프리랜서로 글을 쓰고 사진 찍는 일을 하다가 <오마이뉴스> 사진기자로 들어가게 됐다. <오마이뉴스>는 나에게 많은 사건들과 심도 있게 대면할 수 있게 해줬다. 불평등한 한미관계가 노골적으로 제도화 되어 있는 미주둔군지위협정(SOFA)문제에서부터 매향리 미공군 사격장 문제, 민족모순을 노골화 시키고 있는 분단 문제 등이 그것이다. 이때는 조직적인 후원을 받으며 세상과 만다던 시기였다.”

사진과 만나다

사진에 대해 많은 글을 남긴 미국의 유명한 문예비평가 수잔 손탁(Susan Sontag)은 12살 때 서점에서 우연히 본 한 장의 사진이 자신의 삶을 바꿨다고 한다. ‘베르겐 벤젤과 다하우의 유태인 수용소’에서 찍은 유태인 학살 사진이 바로 그것이다. 그녀는 “사진이건 실생활이건 일찍이 내가 목격한 것 가운데 그처럼 순간적으로 날카롭고도 깊게 칼로 찔린 것처럼 골수에 사무친 것은 없었다”는 말로 그때의 충격을 고백하고 있다.

사진하는 사람들은 대개 수잔 손탁과 비슷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나 역시 그러한데,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1986년이던 그해는 전두환 정권의 폭력성이 점점 심해져 가고 이에 저항하는 대학생들의 활동도 활발하게 진행될 때였다. 그 해 어느 날 우연히 갔던 강원대학교 학생회관 앞에는 1980년 5월 광주에 대한 대자보와 사진이 붙어 있었다. 호기심에 대자보를 읽다가 무의식중에 사진을 보는 순간 나는 온 몸이 얼어붙어 버렸다. 거기에는 계엄군의 총칼에 짓이겨져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만큼 처참하게 분해 되어 버린 광주학살 희생자들의 얼굴을 찍은 사진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 사진들에는 희생자의 얼굴에서 흘러내린 붉은 핏빛만 선명하였고 희생자의 얼굴은 붉은 피에 가려져 있었다.

이렇듯 사진은 세상을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사람을 충격에 빠트리기도 한다. 어느 사진 비평가는 그것이 너무 노골적이어서 때때로 폭력적이기까지 하다고 지적한다. 역사와 관련된 사진은 더더욱 그렇기 마련이어서 역사를 기록하는 다큐멘타리 사진 중에는 충격적인 모습이 많다. 우리의 현실이 폭력적이다 보니 폭력적인 사진이 나올 수밖에.

세상의 폭력적이고 불합리한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은 그 사진을 보는 사람을 변하게 만들고, 변화된 사람은 다시 세상을 좀 더 인간적인 곳으로 변혁하기 위해 살아간다. 이런 점에서 사진의 노골적인 기계적 재현성은 폭력적인 동시에 진보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다.

실제로 사진의 폭력성이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사진에 찍힌 타인들과 그 타인들을 카메라를 사이에 두고 대면해야 하는 다큐멘타리 사진가들에게 있다. 현실의 폭력과 고통을 짊어질 수박에 없는 사람들과, 그 폭력과 고통의 현실로부터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있어야만 하는 사진가들이 사진으로부터 상처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에 뛰어든 사진가들은 언제나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고민과 번민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그리고 사진가는 그 고민과 번민 속에서 사진을 다시 만나게 된다.

“내 기억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진은 1992년 윤금이씨 사진이었다. 옷이 모두 벗겨진 채로 미군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한 한 여인의 사진을 처음 보고 충격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이의 고통과 폭력적인 현실이 나에게는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나를 분노하게 만든 건 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미국에겐 무기력하지만 우리 국민에겐 무자비한 정권이었다. 화장을 해서 가루가 된 윤금이씨의 마지막 가는 길까지 폭력을 휘두르는 전투경찰과 공권력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자리에서 나는 피켓을 들고 경찰과 정부에 항의했는데 그 모습이 사진에 찍혀 <문화일보>에 실렸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후 윤금이씨를 추모하는 행사에서 나는 같은 내용의 피켓을 들고 있는 사람들을 사진에 담고 있었다. 10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그대로인 세상을 사진으로 기록하게 된 것이다.”

회색지대에 서서 세상에 말을 걸다

사진가는 언제나 존재론적인 역설과 대면해야 한다. 그들은 카메라의 렌즈를 통해 사진의 대상을 바라보지만 그들과 함께 할 수는 없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것은 사진가의 운명일지도 모른다. 카메라를 땅에 내려놓고 그들과 함께 하는 순간 사진가는 사진과 함께 사라진다.
세상에 몰입하고 있지만 동시에 관찰하고 있고, 세상에 분노하고 있지만 동시에 침착함을 잃지 않으며, 한 눈으로 렌즈 안의 세상을 보지만 다른 눈으로는 렌즈 밖의 세상을 본다. 그래서 사진가는 세상과 한 발 정도 떨어져 있다.

한 발 떨어져 세상을 보는 눈은 극장에 앉아 영화를 보는 관람객들의 시선과 일치한다. 관객은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주인공의 리얼리티에 빠져 들지만 영화 속 상황에는 개입할 수 없다. 그들은 단지 스크린에서 반사되는 빛의 그림으로만 세상을 바라본다. 그들은 단지 스크린에서 반사되어 좌석을 비추는 적은 빛을 통해서만 그들의 물질적 존재를 시각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 스크린에 반사되어 비치는 적은 빛만 존재하는 공간, 그것이 바로 관람객들이 차지하고 있는 좌석이고, 그 좌석은 스크린에 비춰지는 찬란한 빛과 달리 어둠 컴컴한 회색빛으로 가득 찬 공간이다. 그래서 사진가와 관람객은 현실과 가상의 사이 공간인 회색지대에 존재하는 사람들이다.

“얼마 전에 학생운동을 하다 사회에 진출한 선배를 만난 적이 있다. 술을 마시자고 해서 갔는데 술집이 단란주점이었다. 그날 단란주점에서는 술을 마시며 노래를 부르고, 강변에 나가서는 민중가요를 열창하는 모습이 그 선배에게는 매우 자연스러운 행동처럼 보였는데, 나한테는 그것이 홍상수식 영화의 한편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도 가상이나 상상 속의 모습처럼 재현되기도 한다. 영화가 현실을 반영하고, 또 반대로 우리는 현실을 영화 장면을 통해 인식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이 너무 자연스러운 일일지 모르지만 세상과 한 발 떨어져 있는 사진가에게는 다른 모습으로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사진가는 세상의 좌와 우 사이에, 그리고 위와 아래의 틈새에 존재하는 회색지대에 서서 세상에 말을 걸 수 있는 특권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분단을 이야기 할 때 어렵거나 처연하거나 숙연하거나 감성적인 언어로 말을 한다.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분단을 관광화 하여 싸구려 상품으로 만들어 버린다. 통일전망대에 가면 주화를 넣고 렌즈 안을 보는 기계가 있는데 그 안을 보면 북한의 생활용품이나 관광지 같은 게 보인다. 500원짜리 주화로 북한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런걸 보면 일반인들은 분단의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분단의 수혜자인 것 같기도 하고, 실제로 분단 상황을 유지하는데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분단이라는 상황이 한편으로는 휴머니즘적인 모습으로 재현되지만 또 한편으로는 자본주의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모습이냐?”

그러면서 노순택은 말을 잇는다. 회색지대는 너와 나를 의심케 하는 공간이며, 그곳에 서서 세상을 보면 한발 옆에서 좌우를 볼 수 있다고. 그래서 “너(좌)도 웃기고 너(우)도 웃긴 거 보니, 나도 좀 웃긴 거 같다”고.

“예전에 여의도에서 있었던 어느 집회에 갔을 때의 일이다. ‘참전미술인협회’던가 하는 단체에서 시위를 하는 거였는데, 시위하시는 분 중 한분이 사진을 찍고 있던 나한테 뜬금없이 소리쳤다. “니들이 예술을 알아?” ”

——–

* 이무용, 「도시 공간의 문화정치 – 공간, 주체, 권력의 통합론을 위하여」, 『현대 도시이론의 전환』, 공간환경학회 엮음, 한울아카데니, 1998.
* 수잔 손탁, 『On Photography』, 유경선 옮김, 해뜸, 1986.


김태현 _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큐레이터
2006.12.12 민예총 컬쳐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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