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송경동의 ‘시’와 연대하는, 또 다른 송경동“들”이다!

 





시인 송경동이 구속되었다.

‘희망의 버스’와 함께했던,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 김진숙이 살아서 내려오기만을 간절하게 바라며 오랜 수배 생활을 견디어 왔던, 시인 송경동이 구속되었다. 우리가 희망이라 부르는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두려워하는 권력과 자본이 시인 송경동을 결국 감옥에 가두었다. 아마도 그들은 송경동의 시와 상상력을 가두고 싶은 것 같다. 아니 또 다른 송경동“들”이 만들어 갈 희망을 검열하고 싶은 것 같다. 그들은 그것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틀렸다.

타인의 절망 위에 군림하며 인간보다 권력을, 돈을 숭배하는 그들은 반드시 실패할 것이다. 그들은 송경동의 시와 상상력을 결코 가둘 수 없다. 그들은 송경동의 시를 사랑하고, 송경동의 삶에 연대하고, 송경동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이 시대의 절망에 분노하며 소박한 희망을 만들고자 여행을 떠났던 희망의 버스를, 또 다른 송경동들을 가둘 수 없다.

‘희망의 버스’는 그런 거다. 그들은 이해할 수 없는 그런 거다. 권력과 자본은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불온한 세력을 찾아내고, 배후를 추정하고, 누구라도 눈에 띄면 잡아 가두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겠지만, 희망의 버스가 떠나는 여행의 한 자락도, 송경동의 시에 녹아 있는 쉼표 하나도, 송경동과 연대하는 우리의 마음 한 귀퉁이조차 가둘 수 없다. 우리는 제2, 제3의 노동운동가 김진숙들, 시인 송경동들이 되어 희망의 상상력을 들꽃처럼 퍼트릴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인 송경동의 시(<사소한 물음들에 답함>)처럼 그저 “저 들에 가입되어 있”고 “저 바람에 선동당하고 있”으며, “말없는 저 강물에게 지도받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희망의 버스는, 수많은 송경동들과 정진우들은 그래서 가두어질 수 없으며, 멈출 수도 없다. 그저 우리의 삶을 사랑하며 서로의 삶에 연대하며 희망을 만들어 갈 뿐이다.

시인 송경동은 영웅이 아니다.

시인 송경동은 위험한 사람도 아니다. 우리가 아는 시인 송경동은 타인의 고통과 절망을 외면하지 못하는, 그저 여리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시인일 뿐이다. 심지어 그는 중얼거리는 말투와 나른한 몸짓에 익숙한,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이 없는 세상에서 낭만적인 사랑시를 쓰고 싶어 하는 평범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대추리의 논두렁에 곤두박였고, 용산 남일당 건물에 기어올랐고, 기륭전자 앞 포크레인에 머물렀으며, 콜트콜텍 기타를 만드는 노동자와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85호 크레인에 올라간 김진숙에게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희망의 버스에 올랐다. 그가 영웅이거나 위험한 인물이어서가 아니다. 그저 절망을 나누고 위로하며 희망을 전달하고 싶었을 뿐이다. 희망을 만드는 시는 골방과 컴퓨터 자판이 아니라 몸뚱이와 연대로 쓰는 것임을 깨닫고 있었을 뿐이다. 시인은 입과 글자만이 아니라 시대의 언어, 마음의 연대, 행동하는 양심을 간직해야 한다고 간절하게 믿었을 뿐이다.

시인 송경동이 희망의 시, 살아 움직이는 시를 써나가는 과정이 혹시나 법질서를 위반했는지, 위협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가진 것 없는 사람들, 상처받은 사람들, 희망을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 곁에 머물고자 했을 뿐이다. 법질서를 강요하는 권력과 자본의 눈치를 보는 것보다 인간 송경동, 시인 송경동의 양심과 신념에 보다 충실했을 뿐이다. 자신의 시에, 시인이라는 직업에 좀 더 정직했을 뿐이다.

송경동은 말했다.

“풍선이나 불었으면 좋겠다 / 풀피리나 불었으면 좋겠다 / 하품이나 늘어지게 불었으면 좋겠다”(<혜화경찰서에서>)

그래 그랬으면 좋겠다. 국민과 국가를 위해서 일한다고 울부짖는 저 권력이, 자본이, 경찰과 검찰이 시인 송경동과 송경동들을 가두려는 무모한 야욕을 버렸으면 좋겠다. 고장 난 자본주의에서 신음하는 수많은 삶들에게 희망은 선물하지 못할망정 희망을 만들려는 사람들을 가두려는 억지를 포기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시인 송경동이 석방되고, 수많은 송경동들이 희망을 만들고 시를 짓고 춤을 추고 노래를 했으면 좋겠다. 하염없이 풍선, 풀피리, 하품, 트럼펫이나 불어도 마음 한 구석이 무겁지 않게.

우리는 문화예술인들이다.

또 다른, 수많은 송경동들이다. 희망의 버스의 운전사이자 안내원이며 승객들이다. 우리는 또 다른 희망의 버스에 더 많은 시, 노래, 춤, 영화, 사진, 그림 그리고 상상력을 간직한 채 올라탈 것이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웠던 85호 크레인에서 희망을 만들었듯이, 우리는 시인 송경동에 대한 구속과 탄압에서조차 또 다른 가능성을 상상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송경동의 마음에, 송경동의 시에 연대할 것이다. 절망 위에 군림한 채 희망을 두려워하는, 고장난 자본주의를 강요하는 권력과 자본에 맞설 것이다.

이제 우리가 아직은 만나지 못 한 수많은 송경동들, 수많은 언어들과 상상력들이 우리와 함께할 것이다. “우리의 참담한 오늘을 우리의 꽉 막힌 내일을 얼어붙은 이 시대를 열어라”(<이 냉동고를 열어라>)








2011년 11월 22일

언제나 시, 노래, 춤, 영화, 사진, 그림 그리고 상상력과 함께하는, 수많은 송경동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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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싫어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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