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지만, 그럴지도 모르고
그가 북괴를 이롭게 할 목적을 손톱만큼이라도 가졌는지는 알 수 없다.
북괴를 이롭게 할 목적이 없었다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북괴를 이롭게 했는지도 알 수는 없다. 그는 어쩌면 북괴를 ‘공존의 파트너’로 여겼는지도 모르고, 그 이상인지도 모른다. 위험한 자다.
그가 천착해온 대인지뢰 금지 운동은 살상무기의 반인간성을 널리 알리고, 국제연대를 모색했다는 점에서 박수 받을지 모르지만, 섣부른 대인지뢰 제거가 북괴의 오판을 부채질하고, 남침을 불러와 결과적으로 북괴를 이롭게 할지 누가 알겠는가. 그는 평화를 앞세웠지만, 가면 뒤에 붉은 사상을 숨기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 빨갱이들은 변신술에 능수능란하니까. 평화를 외치면서 적화야욕을 숨기니까.
그의 인생사를 잠시 들춰보는 걸로도 얼마나 많은 얘기들이 감춰져 있는지 알 수 없다. 대학에서 제적, 노동운동을 한답시고 공단거리를 헤맨 일, 그러다 자신의 친북성향을 찾아 좌파통일운동에 가담한 일, 1995년 국가보안법 위반 건으로 구속된 일, 이런 일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 모든 것들이 북괴를 이롭게 해온 활동이 아니라고 누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그가 자신의 사상을 숨기고 있는 한, 머릿속을 까뒤집어 전향하고 고백한들 믿을 수 없다.
그가 내미는 ‘사색’의 사탕발림에 속지 말 것을 권한다. 그의 책 <비무장지대에서의 사색>엔 사기적 사색술이 숨겨 있다. 비무장지대에서 대체 무슨 팔자 늘어진 사색이란 말인가, 그야말로 적화통일의 사색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거둘 수 없는 것이다.
다른 책 <민통선 평화기행>이 문화관광부가 선정한 좋은 책 100권에 선정되어 국제도서전에 출품되었다는 건 그의 주도면밀함을 방증하는 사례다. 좌파가 어떻게 문화관광부에 연줄을 댔는지, 국제도서전을 통해 국제공산혁명을 도모하지는 않았는지 뒷조사가 필요하다.
그는 자신의 글로, 사진으로, 또 다른 활동으로 말하지 말라는 걸 말했다. 아무나 말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나, 아무나 말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고, 아무튼 북괴를 이롭게 할지도 모르는 것들이었다.
툭하면 내미는 예술의 오리발, 그는 예술의 탈을 쓴 자였고, 예술에 상상력과 실천이 허용돼야 한다고 떠들었지만, 그 따위가 예술인가? 예술이면 예술다워야지, 왜 하지 말란 짓을 하는가.
이 증명된 바 없는 ‘알 수 없음’, 증명할 수 없는 ‘그럴지도 모름’으로 이시우는 다시 구속되었고, 그의 모든 필름은 압수되었다. 1심 무죄, 2심 무죄가 선고됐지만 여전히 재판은 진행 중이다.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그의 필름은 ‘전쟁기념관’에 압수되어 있다.
헌대도 반성은커녕, 사진전을 연단다. 사진을 통해 이시우는 정체를 드러낼까, 정체를 감출까? 사진 속의 남자는 이시우가 아닌데도, 이시우를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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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생각, 잡글/사진이라는 털2010/08/06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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