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노트

나의 국가보안법 재판은 검찰의 안보론과 사진가의 예술론의 격돌의 장이었다. 검찰에게 나는 예술가를 위장한 간첩이었고, 새로운 예술론은 위험한 예술론이었으며, 창작의 자유는 안보위협요소였다.

21세기로 들어서기 직전 나는 나름대로의 미학관과 예술론을 정리하고 본격적인 사진작업에 들어섰다. 아름다움은 내게 다른 말로 ‘결’이다. 세상은 결로 존재한다. 바람은 바람결로, 물은 물결로, 숨은 숨결로 존재한다. 결을 발견하는 것은 세계의 숨어있는 구조를 발견하는 것이며 예술창작은 세계의 결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결이 발견되는 것만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임을 깨달았다. 우연한 만남의 결과든 고단한 노력의 결과든 ‘내’가 결을 만들고자 할 때 결이 비로소 발견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창작뿐만이 아니라 이론과 실천까지도 예술가의 몫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이론과 실천, 창작의 삼위일체. ‘한강하구’는 그런 작업과정이 처음으로 일관되게 실현된 주제이다.

2000년, 강화도로 이사해서 한강하구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으니 이 전시는 10년 동안의 작업성과인 셈이다. 한강하구에 대해 설레던 ‘예감’은 10년을 거치며 『정전협정의 틈, 유라시아로의 창, 한강하구』라는 책으로 출판되었고, ‘한강하구에 평화의 배 띄우기’라는 행사를 통해 남북의 국경하천이자 유라시아의 국제하천인 한강하구의 가능성을 실현하기 시작했다. 이제 그간의 과정에서 사색했던 사진들을 전시하게 되니 그저 부끄럽다.

내게 사진은 90%의 이론과 9%의 실천과 1%의 영감으로 빚어진다. 그러나 1%를 얻기 위해 나머지 99%를 버려야할 순간을 거쳐야 사진은 비로소 즐거운 것이 된다. 아는 것은 행하는 것만 못하고 행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즐거움에 이르러 내안의 ‘결’과 세계의 ‘결’은 비로소 화해한다. 내가 내사진에 대해 거는 기대이다.  - 이시우

Posted by 싫어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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